무엇이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는가
장벽을 허물고 얼싸안아야 할 젊은이들이
총부리를 겨누고 피비린내를 풍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공동경비구역 JSA
Joint Security Area, 감독 박찬욱, 출연 이병헌, 송강호, 이영애, 2000.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를 보면서 이호철의 단편소설 <판문점>(1961)을 생각했다.
어느 신문기자가 판문점에 취재를 나갔다가 북한 여기자를 만난다. 그는 젊은 여기자에게 이성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둘의 만남은 발전할 수 없다. 남과 북의 벽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분단 현실이 청춘남녀 간 애정의 교류마저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북한 젊은이들의 만남을 소재로 했으며, 그 좌절을 통해 분단의 비극성을 고조시키는 점에서 소설 <판문점>과 닮았다. 물론 북한 여기자와의 만남이 한순간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리는 소설에 비해, 분단의 경계를 넘는 젊은이들의 뜨거운 우정과 비극적 죽음을 그린 영화가 강한 인상을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박상연의 소설 <DMZ> 영화화
박상연의 소설 <DMZ>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우선 소재부터가 충격적이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밤낮없이 대치하고 있는 남북의 경비초소. 그곳에 근무하는 병사들이 은밀히 접촉한다는 설정이 놀랍다. 냉전의 남북관계에서 볼 때 그것은 엄연한 적과의 내통이고, 용납될 수 없는 범죄행위가 아닌가.
추리 기법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북한초소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조사관은 스위스의 중립국위원회에서 파견된 한국계 여성 장교 소피 소령이다. 그는 한국군 병사가 북한군에 납치되었다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북한군 장교와 사병을 사살하고, 부사관에게 상처를 입힌 것으로 조사된 사건에 몇 가지 미심쩍은 점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남한의 이수혁 병장과 북한군 부상자인 오경필 중사를 차례로 만나 그들의 입을 열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진상이 드러나고, 처음 알려진 사건의 전말은 당사자들이 조작했던 것임을 알게 된다.
북한군 오 중사는 정우진 전사와 비무장지대에 수색을 나갔다가 지뢰를 밟아 낙오된 이 병장을 발견하고 지뢰를 제거해준다. 이에 고마움을 느낀 이 병장은 돌멩이에 편지를 달아 메에 다리 너머로 던지며 오 중사와 가까워지고, 급기야 어느 밤 다리를 건너 북한초소를 방문하기에 이른다. 이내 그들은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발전하고, 같은 근무조인 남성식 일병까지 끌어들여 남북한의 네 병사 사이에 은밀한 우정이 무르익는다.
현실 속 공동경비구역 JSA
그러나 꿈같은 시간은 오래가지 못하고, 북한군 순찰 장교가 초소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남성식 일병이 엉겁결에 쏜 총에 순찰 장교와 정우진 전사가 쓰러지고, 그 돌발 상황에서 노련한 오경필 중사는 기지를 발휘하여 남성식 일병을 초소로 돌려보내고, 권총 발사는 이 병장의 단독 행위로 위장한다.
그리하여 이미 알려진 대로 북한군에게 잡혀간 이 병장이 탈출하면서 북한군 초병을 사살했다는 각본이 짜이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오던 이 병장은 총소리를 듣고 지원 나온 아군에게 구조가 된다.
그런데 일이 거기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소피 소령에게 비밀이 드러나자 소심한 남 일병은 자기가 총을 쏜 일마저 문제가 될까 봐 두려워 창밖으로 뛰어내려 자살을 한다. 이수혁 병장 또한 직위 해제를 당해 떠나는 소피 소령으로부터 자기가 남 일병보다 먼저 정우진 전사를 쏘았다고 하더라는 오 중사의 증언을 전해 듣고,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호송병의 총을 빼앗아 목숨을 끊는다.
남북한의 병사들이 만나 즐겁게 노닐면서 고조되던 유쾌한 분위기는 경비초소의 총격 사건을 계기로 싸늘하게 식으면서, 종국에는 두 젊은이의 비장한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젊은이들의 익살스러운 모습에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리던 관객은 어느덧 이들의 돌발적인 죽음 앞에서 안타까운 가슴을 쓸어내리며 무거운 한숨을 쉬게 된다.
여기서 이수혁 병장의 죽음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과연 그는 꼭 자살해야 했을까. 그가 친교를 맺었던 북한군 병사를 먼저 쏜 일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속죄하려는 자세는 훌륭하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을까. 그의 죽음은 아무래도 충격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작위성이 엿보인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메세지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순수하기 짝이 없는 남북한의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젊은 그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을 따지고 보면 국토가 두 동강 난 우리 조국의 현실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나뉘어 총을 마주 겨눈 상황이 아니라면 그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목숨을 끊을 필요가 있겠는가. 남북한 병사들이 달빛 아래 어울려 닭싸움을 하고, 서로 밀어뜨리기 놀이를 하는 것은 언젠가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렇게 행동해야 함을 미리 보여 준 것이 아닐까.
한 나라 한 민족의 젊은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놀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장벽을 허물고 얼싸안아야 할 젊은이들이 총부리를 겨누고 피비린내를 풍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 이 영화에 나타난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희생은 그 사실성이나 필연성의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국토 분단의 비극성을 환기하기 위한 극적 장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 영화는 그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반공영화와는 큰 차이가 있다. 우선 북한 병사들을 인간적으로 그린 것이 한 발짝 앞선 것으로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나오는 북한군들은 위기에 처한 국군을 구해 줄 정도로 인정미가 있고, 농담을 던지며 장난을 칠 줄도 알고, 때로 불안에 떠는 소심한 일면도 보여 준다.
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가 아니라,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형제요 친구요 이웃인 것이다. 이와 같은 북한에 대한 시각 변화야말로 이 영화의 참신함이자 미덕이다.
새천년에 들어와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북한에 대한 우리의 감정도 크게 달라졌다. 만약 남북한이 옛날처럼 서로 노려보기만 하는 상황에서라면 과연 이 영화가 개봉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 북한을 우호적으로 묘사한 이적(利敵) 영화로 낙인찍혀, 상영은 고사하고 감독과 제작자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곤욕을 치를 것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운 좋게도 북한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시점에 개봉됨으로써 이 영화가 관객들과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남북 분단이라는 식상한 주제를 가지고 과감하게 도전장을 낸 감독의 배짱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올바른 현실 인식을 갖춘 이 영화에 관객이 많이 몰린 것은 반가운 일이다. 관객의 성숙한 안목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마치며
* 해당 내용은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장병호 영화이야기 [은막의 매혹]에서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