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큰 덩치로 말썽 피우는 무리를
한 방에 때려눕힐 때
관객들은 말할 수 없는 통쾌함을 느낀다.
[영화] 범죄도시-개성파 인물들의 잔치 한마당
THE OUTLAWS, 감독 강윤성, 출연 마동석, 윤계상, 2017.
가장 인상깊게 본 영화 <범죄도시>
근래에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범죄도시>(2017)이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을 배경으로 조선족 출신 폭력 조직들과 싸우는 강력반 형사의 이야기인데, 폭력배들의 주도권 싸움과 더불어 그들을 일망타진하고자 좌충우돌하는 주인공의 활약상이 볼거리이다. 경찰이 범인 쫓는 영화는 그동안 많이 보아온 터라 ‘빤한 내용이겠지!’ 하고 별 기대 하지 않았는데, 보다 보니 ‘어! 이거 대단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범죄영화의 흔한 주제와의 차별화
요즘 보면 우리나라 영화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이 범죄를 다룬 영화가 아닌가 싶다. 과거 장동건이 나왔던 <친구>(2001)를 비롯해서 송강호의 <살인의 추억>(2003)과 박신양의 <범죄의 재구성>(2004), 이병헌의 <달콤한 인생>(2005)과 조인성의 <비열한 거리>(2006), 김래원의 <해바라기>(2006)와 김윤석의 <추격자>(2008) 등이 범죄자를 그린 영화로서 꽤 관객들의 호응을 받았다.
근래에도 원빈 주연의 <아저씨>(2010)를 필두로 김윤석의 <도둑들>(2012)과 황정민의 <신세계>(2013), 유아인의 <베테랑>(2014)과 이병헌의 <내부자들>(2015), 그리고 정우성의 <아수라>(2016)와 설경구의 <불한당>(2017), 김주혁의 <독전>(2018) 따위가 모두 흉악범들과 치고, 박고 싸우는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범죄영화는 선악의 대결 구도가 분명한 데다가 숨 막히게 쫓고 쫓기고, 피 터지게 때리고 맞는 활극 장면이 많아서 관객들이 재미있어하는 것 같다.
주연배우의 개성적인 연기와 체격 활용
2017년 추석 무렵에 나온 강윤성 감독의 <범죄도시>는 주먹질과 칼부림이 난무하는 활극도 활극이려니와 무엇보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잘 살린 점이 두드러져 보인다.
우선 강력반 형사 주인공 마석도를 보자.
우람한 체격을 가진 그는 웬만한 폭력배 따위는 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받으면서 때려잡을 만큼 막강한 완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칼 든 조폭들을 만나면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니네들 내가 조용히 있으랬지?” 하며 맏형이 코흘리개 막내 다루듯이 단숨에 제압해버린다.
그가 큰 덩치로 말썽 피우는 무리를 한 방에 때려눕힐 때 관객들은 말할 수 없는 통쾌함을 느낀다. 이 영화는 체격이나 인상 등 주연배우 특유의 개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마냥 인상만 쓰고 다니며 힘자랑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짠돌이 상사의 지갑을 슬쩍하여 후배 형사들 회식을 시켜주기도 하고,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동료들 간식거리를 잔뜩 주워들고는 계산은 조폭에게 미루기도 하는 등 능청맞은 면을 지니고 있다.
폭력배들에게는 더없이 두려운 존재지만 동료나 약자들에게는 한없이 정겹고 부드러운 남자,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해주는 인정미 넘치는 모습에 보는 이들 모두가 친근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인물의 성격과 개성의 탁월한 표현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인물은 장첸이다.
하얼빈 출신 조선족 폭력배인 그는 훌쩍한 키에 치렁치렁한 코트를 걸치고 장발에 꽁지머리를 묶은 모습이 처음부터 무시무시한 인상을 풍긴다. 그는 빚을 갚지 못해 살려달라고 비는 조선족 동포에게 연변 말투로 “니는 그 돈 다 갚기 전까진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다.”라며 한쪽 손을 쇠망치로 내리치는 잔인함을 보여준다.
그는 규칙이나 질서 따위는 안중에 없고, 욕심나는 것이면 아무것에나 손을 뻗친다. 부하의 여자가 반반해 보이자 “장사를 할라믄 성깔 부리믄 안 되지, 니 성깔 좀 죽여야겠다.”라며 건드리는가 하면, 다른 조폭이 운영하는 오락실에 들어가 기물을 때려 부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 두목을 불러 “이제 여기는 얼씬도 하지 마라.”며 그곳을 차지해버린다.
그런가 하면 청부업자로부터 일을 맡아 놓고는 “생각해보니까 계산 잘못했소. 5억은 너무 적소. 한 10억은 받아야겠소.” 하고 제멋대로 말을 바꾼다. 그의 도발에 열을 받은 독사파 두목이 “내 누군 줄 아니?”하고 묻자 “돈 받으러 왔는데 뭐 그것까지 알아야 되니?”하고 맞받아치며 눈 깜짝할 사이에 칼침을 놓아버린다.
이처럼 그는 막가파식으로 기존 폭력조직들을 하나씩 손아귀에 넣어나가는데, 그가 신호등을 무시한 채 부하들을 이끌고 유유히 차도를 가로지르는 장면은 사회규칙에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무법자 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장첸이 데리고 다니는 두 명의 똘마니 또한 행패가 그악스럽기 짝이 없다.
머리를 박박 깎고 표독한 눈길로 사람을 째려보는 위성락과 연신 비열한 웃음을 히죽거리는 양태가 그들인데, 연변 사투리에다 물불 가리지 않고 날뛰는 행동거지들이 영락없는 조선족이다. 오죽했으면 위성락 역할을 한 배우가 청룡영화상 시상식에 나와 “저 조선족 아니에요!”라며 해명했겠는가. 그는 남우조연상 수상소감을 말하며 무명의 설움에서 북받쳐 오르는 감격의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 밖에도 장첸에게 약점을 잡혀 어쩔 수 없이 동지들에게 등을 돌리고 그의 수족이 된 도승우가 급기야 아내를 건드리는 것마저도 눈감아야 하는 딱한 처지라든지, 업무능력은 시원찮은 형사반장이 승진을 눈앞에 두고 실적을 올리고자 부하들을 극성스레 몰아대는 모습이라든지, 알량한 자존심으로 티격태격 기 싸움을 하는 이수파 두목과 독사파 두목의 모습은 잔재미와 함께 영화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관객들의 호응과 높은 관람율
<범죄도시>는 그동안 수많은 영화가 우려먹고 남은 소재인 형사와 조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따라서 웬만해서는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기 어려울 터임에도 불구하고 9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였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답은 딱 하나, 인물의 성격들을 탁월하게 살려낸 점일 것이다. 사람의 성격은 그가 취하는 태도나 말투, 표정 따위에 묻어난다.
이 영화는 살아 숨 쉬는 개성적인 인물들의 적절한 배치 덕분에 진부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여느 조폭영화의 아류로 휩쓸리지 않고 우뚝 설 수 있었다. 영화의 기본은 인물의 성격 창조이며, 개성 있는 인물 창조가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임을 <범죄도시>는 웅변해주고 있다.
마치며
* 해당 내용은 장병호 영화이야기 [은막의 매혹]에서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