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술관에서

부암동 서울미술관

부암동 카페골목

서울 부암동의 딸아이 집에 머무를 때면 아침 일찍부터 반나절 외출을 준비한다. 밤새도록 그림을 그리다 새벽녘에 잠이 드는 딸아이의 수면을 위해서이다.

조용히 부암동 카페골목을 산책하고 토스트에 모닝커피를 마신 후, 아침 개관시간에 맞추어 환기미술관으로 향한다. 환기미술관에 가면 달과 항아리에서 풍기는 정돈된 추상美가 조용한 아침 분위기에 잘 어울리기에 자주 찾는 미술관이다.

몇 년 전의 이야기다. 아침 일찍부터 열려있는 카페에 앉아 모닝커피를 마시고 환기미술관으로 가다보니 인근 서울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카페 소사이어티’

카페 소사이어티

직감적으로 데미안 허스트 작품류가 전시되나 싶어 환기미술관이 아닌 서울미술관을 찾았다. <사임당, 그녀의 화원>과 동시에 전시 중인 <카페 소사이어티展>에서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은 없었다. 대신 ‘낭만다방’이라는 해방 전후의 분위기를 연출해 놓았다.

그 시절 ‘다방’이라는 공간은 시인, 화가 등 예술가들의 전시 발표회가 열리는 문화행사장이었는데, 그 시기의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박수근 화백의 작품 및 익히 알려진 화가들의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이중섭의 은화 작품과 전시공간

이번 카페 소사이어티展에서 나로서는 귀한 작품을 감상했다. 이중섭의 은화 작품 세 점을 진품으로는 처음 감상을 한 것이다. 마티스를 연상케 하는 천연덕스러운 드로잉을 보노라니 불현 듯 떠오르는 아버지 생각에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담뱃갑의 추억

어린시절 나는, 아버지 담뱃갑에서 은박지를 고급스럽게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비록 담배 은박지지만 당시로서는 고급 종이로 인식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은 은박지로 종이학도 접었고 필통 바닥에 깔기도 하였으며 화약으로 로켓(?)을 만들 때도 불에 타지 않도록 화약을 감싸는 긴요한 용도로 이용되기도 했었다.

다행히 은박지에서 풍기는 담배 내음이 그저 아버지의 냄새로만 여겨서였는지 싫지가 않았다. 전시 작품의 감상을 마치고 낭만다방의 앤티크한 소품들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다.

우리 아버지도 한때, 낭만다방이라는 곳에 가면 도라지 위스키를 시켜놓고 누군가를 그리워했던 사람이 있었을까? 궁금했다…그렇다고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오랜 세월에 묻혀 미운 정은 시나브로 소진되고 이제 겨우 고운 정만 남았을 아흔이 넘은 노모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아니지, 부전자전이라고 하던데 내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될 것 같네! 요즘 어디 가면 도라지 위스키를 마실 수 있지?

마치며

카페소사이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