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과의 경기야말로 총만 들지 않았지
전투에 임하는 마음이 아닌가.
1970년대 한국을 뒤흔든 권투 열기와 김득구 선수의 비극을 영화화 했던 [그 시절 영화] 챔피언을 이야기한다.
Champion, 감독 곽경택, 출연 유오성, 채민서, 2002.
그 시절 영화_챔피언
그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
70년대 한국, 권투는 국민 스포츠
요즘은 프로스포츠가 활성화되어서 박찬호와 박세리와 같은 야구나 골프 선수들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한때 우리나라에 권투선수가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던 시절이 있었다. 1960∼70년대만 해도 동양이나 세계타이틀을 갖는 권투선수들은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을 받았다.
아마 지금의 기성세대는 세계 선수권이 걸린 경기가 열리는 날 동네 사람들이 흑백텔레비전 앞에 몰려 앉아 삿대를 지르며 열을 올리던 광경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벤베누티를 꺾고 한국 최초의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김기수(1966)를 비롯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로 유명한 4전 5기의 홍수환(1974), 그리고 유제두(1975)와 박찬희(1979)를 거쳐, 15차 방어를 하고 타이틀을 반납한 장정구(1983)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기간 세계 선수권을 보유했던 유명우(1985)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수가 한국 권투사의 명맥을 이으며 국민을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모았다.
김득구 선수의 죽음, 씁쓸한 기억
그런데 그 시절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던 비보 하나를 아직껏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바로 김득구(1955~1982) 선수의 죽음이다. 그는 1982년 미국 원정경기에서 레이 맨시니 선수와 난타전을 벌인 후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순간, 내 마음은 왜 그리 서글펐을까. 그것은 분명 교통사고로 죽었다거나 불이 나서 죽었다거나 그 당시 신문에 자주 났던 것처럼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한 사망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미국 선수가 고의로 반칙을 했다면 모르되, 정당한 경기 끝에 사망했다면 누구를 탓하거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일이다. 안타깝지만 불운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나는 뭔가 가슴에 북받치는 설움과 울분이 뒤섞인 착잡한 감정을 느꼈다. 왜 그랬을까? 우리가 미국보다 힘이 약한 나라였기 때문이었을까. 어렸을 때 힘센 녀석에게 일방적으로 당했을 때와 같은 그 억울하고 서글픈 느낌은 나만의 것이었을까.
영화 <챔피언> 어떻게 표현했을까
영화 <챔피언>(2002)은 <친구>(2001)로 일약 한국 영화계의 별로 떠오른 곽경택 감독이 후속으로 들고나온 작품이다. 그는 김득구라는 실재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가난한 시골뜨기 소년이 무작정 상경하여 권투계에 입문, 피나는 노력으로 승승장구하면서 일약 세계챔피언에까지 도전하는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 영화는 김득구 선수와 같은 시기를 살았던 기성세대에게는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챔피언을 ‘참피온’으로 표기하던 시절, 눈썹까지 뒤덮는 더벅머리에 등 뒤에 ‘동아체육관’이란 글씨를 새긴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니는 행색이며, 석유풍로에 불을 붙여 ‘삼양라면’을 끓여 먹는 자취생활의 모습, 안내양이 승객의 요금을 받던 낡은 시내버스 장면 따위는 옛 추억을 자극하는 풍경들이다.
그런 가난 속에서도 ‘인내’니 ‘노력’이니 하는 유치한 자기 다짐을 책상머리에 써 붙이고 낮에는 막일하고 밤에는 권투도장에 나가서 모래주머니를 두들기는 주인공의 모습은 돈도 백도 없이 오직 몸뚱이 하나만을 밑천으로 ‘잘살아보세!’를 외치던 1960∼70년대 한국인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조국 근대화를 외치며 너도나도 가난의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던 시절, 오로지 주먹 하나로 세계정상에 도전하는 권투야말로 우리의 욕망을 대리만족시켜 주던 희망의 분출구였는지도 모른다.
챔피언, 왜 김득구 선수를 끌어냈을까
그런데 감독이 한동안 잊고 있던 김득구를 세상에 다시 끌고 나온 이유가 단지 이것뿐이었을까. 가난한 시절의 우리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면 구태여 그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을까. 가난의 설움을 떨쳐버리고 신분 상승을 꿈꾸다 추락하는 이카로스와 같은 인물이라면 굳이 김득구를 빌리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이 영화를 보기에 앞서, 나는 김득구 선수의 죽음을 어떤 식으로 그렸을까 하고 자못 관심이 컸다. 어찌 보면 그것은 김득구와 맨시니 두 사람의 경기가 아니라 강대국인 미국과 약소국인 우리나라와의 대결이 아닌가. 대개 사람들은 운동경기를 볼 때 마음속으로 피아(彼我)를 구별한다.
양편을 객관화시켜 동등한 비중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임의로 자기편을 만드는 것이다. 비록 자기와는 아무런 친분이 없는 선수라 할지라도 그가 자기네 지역 출신이라든지, 자기와 성씨가 같다든지, 아니면 선수의 인상이나 그의 소속사 따위를 가지고 한쪽 선수에게 무게를 주고 응원하는 것이다.
하물며 외국 선수와의 대결이야 오죽하겠는가. 외국과의 경기야말로 총만 들지 않았지 전투에 임하는 마음이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우리 선수가 졌고, 더욱이 목숨까지 잃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을 단순한 선수 한 사람의 패배로 국한하고 그냥 덮어버릴 수 있는 문제인가.
그런데 영화 <챔피언>은 이러한 외국 선수와의 대결을 아무런 민족의식이나 감정 표출이 없도록 탈색시켜 버렸다. 그런 탓인지 주인공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미국 선수와 싸우다 죽은 일은 우리나라 장충체육관에서 국내 선수와 대결하다 죽은 것과 조금도 다름없이 느껴진다.
따라서 주인공의 약혼녀가 전파사의 텔레비전 앞에 모여선 사람들의 어깨너머로 주인공의 죽음을 확인하고 울먹이며 돌아서는 장면을 보며, 관객은 그 여자의 불행에 연민의 정을 느낄지언정 민족적 비애감이나 울분으로 끓어오르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온 국민이 땅을 치며 통곡을 해도 시원찮은 일을 이렇게 단순화시켜 버린 것은 무엇 때문일까?
챔피언의 한계, 무엇일까?
물론 이 영화에 반미감정을 앞세울 것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외국 선수와의 경기에서 자국 선수에 대한 응원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가 아닌가. 아이들 싸움을 보더라도, 내 집 아이가 코피가 터져 울고 들어왔다면 그게 좀 속상할 일인가. 하물며 미국 선수와 싸워 한국 선수가 죽었는데, 여기서 어찌 동족으로서 울분이 표출되지 않을 수가 있는가.
이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도 않으면서 굳이 비명에 간 김득구를 2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다시 끌어올린 곽 감독의 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적어도 김득구의 소재를 가지고 그 가슴 쓰린 부분을 건드리지 못했다면, 이는 애써 깎은 과일을 껍질만 먹고 알맹이는 고스란히 버리는 것 같은 안타까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바로 이 점이 헝그리 복서의 눈물겨운 현실 극복 의지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이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흠이요 한계가 아닌가 싶다.
마치며
* 해당 내용은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장병호 영화이야기 [은막의 매혹]에서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