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 숨막히는 해상전투

수 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영화] 명량 숨막히는 해상전투

명량_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Roaring Currents, 감독 김한민, 출연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김명곤, 2014

명량의 해

세월호 사건으로 온 국민을 슬프게 했던 2014년은 영화계에서는 ‘명량의 해’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한민 감독의 <명량>(2014)은 그해 7월 30일 개봉하여 열흘 만에 우리나라 열 번째이자 최단기간 1천만 관객 동원 영화가 되었으며, 그 기세를 몰아 1천 700만 6천 명의 관객을 끌어들임으로써 역대 최다 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사람들은 영화 흥행 요인으로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꼽았다. 그해 4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엄청난 상실감을 느꼈고, 무능한 정부에 대해서도 실망감이 컸기 때문에 국민이 위안을 얻고 자긍심을 되찾고자 극장을 찾았다는 것이다. 일부러 시기를 맞춘 것은 아니겠지만 개봉 시기가 국민 정서와 맞아떨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영화계의 새로운 기록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시사성에만 기대 것이냐 하면 그것은 결코 아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는 <실미도>(2003)를 시작으로 <태극기 휘날리며>(2004)와 <왕의 남자>(2006), <괴물>(2006)과 <해운대>(2009), <도둑들>(2012)과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 이어, <7번 방의 선물>(2013)과 <변호인>(2013) 등이 있었지만 제각기 작품성을 지닌 것들이었다. <명량> 또한 마찬가지다.

우선 이 영화는 이순신 장군을 전면에 내세운 것부터가 대단하다. 대개 유명한 역사 인물은 영화의 선호대상이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은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호기심의 동물이라 늘 새로운 것에 눈을 반짝인다.

과거 김진규(1923~1999) 주연의 <성웅 이순신>(1971)과 <난중일기>(1977)가 대박을 노렸다가 쓴맛을 본 사례가 있다. 열두 척의 배로 왜적을 무찌른 울돌목의 명량해전 또한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렇듯 다들 빤히 알고 있는 사실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자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용감한 이순신의 비장한 연기

<명량>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은 주인공 배우의 비장감 넘치는 연기라고 하겠다.

이순신 장군 역할로 배우 최민식을 기용한 것은 매우 잘했다고 본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연기파 배우가 아닌가. 그는 고뇌에 찬 지도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결단력과 용기, 엄격한 군율이 그의 무기이다. 그는 영화에서 한 번도 웃지 않는다.

태풍처럼 닥쳐오는 위기 앞에서 웃음이 나올 리가 없다. 그를 사로잡는 것은 극심한 불안과 긴장이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다. 한번 옳다고 믿는 바에 대해서는 부하 장수들이 무슨 말을 해도 물러서지 않는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장수 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지.”

“두려움은 필시 아군과 적을 구별치 않고 나타날 수가 있다. 저들도 지난 육 년 동안 나에게 줄곧 당해온 두려움이 분명 남았기 때문이다.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되어 나타날 것이다.”

“지금 수군을 파하시면 적들이 서해를 돌아 바로 전하께 들이닥칠까 신은 다만 그것이 염려되옵니다. 아직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하여 싸우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더는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또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그가 뱉어내는 한 마디 한 마디는 거저 나오는 말이 아니다. 모진 고통과 분노와 한숨 속에서 쥐어짠 끝에 나온 말이다.

대규모 명량 전투의 숨막히는 현장

대규모 해상전투 또한 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빗발치듯 화살을 쏘고 연기를 뿜으며 포를 발사한다. 적들이 조총으로 맞선다. 적선이 깨어지고 배 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와 적들을 덮친다. 선박들끼리 부딪쳐 적선이 박살이 난다. 수많은 배가 소용돌이 물살에 휩쓸려 바닷속에 잠긴다.

복면한 적의 사수가 표적 사격을 하다가 우리 장수가 쏜 화살을 맞고 비명 속에 바다로 떨어진다. 적들이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던지며 우리 배로 넘어오고 그들을 맞아 우리 군사들이 용감히 싸운다. 승군들도 합세하여 창을 휘두른다. 선실 바닥에서 격군들이 사력을 다하여 노를 젓는다. 영화는 아수라장이 된 전투 장면을 한 시간 가까이 다채롭게 보여준다.

캐릭터 부족의 한계

물론 이 영화에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이 영화는 이순신을 제외하고는 인물들의 개성이 약하다. 휘하 장수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성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이순신 한 사람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탐망꾼 임준영의 죽음이 애절하려면 산 위에서 울부짖는 벙어리 아내와의 애틋한 사연을 관객이 알 수 있어야 한다. 첩보원 노릇을 하는 왜인 ‘준사’가 어떻게 아군을 돕게 되었는지도 설명이 필요하다.

적장들도 그렇다. ‘大道無門’을 휘갈겨 쓰는 도도 다카도라(藤堂高虎)는 그 정도로 되었다 치고, 한산도의 치욕을 씻고자 하는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와 구루지마 미치후사(來島通總)는 잔뜩 눈에 힘을 준 채 무게만 잡고 있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명량 전투 장면의 미흡함

해전 장면도 답답한 부분이 보인다.

백화점식 싸움 장면의 나열만 있고 구체적 정황이 보이지 않는다. 숲만 보여주고 나무가 보이지 않는 꼴이다. 전투에 임하는 특정한 몇몇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을 몇 발 더 가까이 다가가서 비쳤더라면 훨씬 박진감이 커졌을 것이다.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이순신 장군이 탄 대장선 하나가 일당백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물론 난중일기를 보면 개전 초기에 아군 장수들이 겁을 먹고 뒤로 빠지려고 하여 장군이 군율을 내세우며 꾸짖는 부분이 있다. 장군은 그렇게 부하들을 독려하여 함께 적을 쳐부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영화에는 대장선이 적에 둘러싸여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나머지는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만 하고 있다. 그야말로 처형감이다. 사료에 충실히 하려고 한 것이 엉뚱한 꼴이 되고 만 것 같다.

3대첩 명량,한산,노량

<명량>의 마지막 부분에 한산도 싸움이 예고된다. 김한민 감독은 이번 명량에 이어 한산도에서 노량까지 이순신 장군의 3대첩을 모두 영화화해볼 심산이라고 한다. 다음 영화에서는 해전 장면이 좀 더 박진감이 있었으면 좋겠다. 후속작 <한산, 용의 출현>과 <노량, 죽음의 바다>가 벌써 기대된다.

마치며

* 해당 내용은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장병호 영화이야기 [은막의 매혹]에서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