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국제시장

평범한 아버지의 위대한 삶

Ode to My Father, 감독 윤제균, 출연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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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의 평범한 아버지

나는 영화를 보며 잘 울지 않는 편인데, 모처럼 임자를 하나 만났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2014)을 볼 때였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숨이 답답해지며 눈물이 터질 듯 말듯 눈시울이 가물거렸다. 근래에 없던 일이다. 주인공이 살아온 과정이 너무 힘들고 고생스러워 보였기 때문일까.

주인공 덕수는 6‧25 피란 시절에 아버지와 막내 누이를 잃는다. 흥남의 피란 인파 속에서 미군 함정에 올라탔으나 막내가 보이지 않자 아버지가 다시 배에서 내린다. 그렇게 아버지와 누이와 생이별을 하고 만 것이다.

부산에 도착한 주인공은 국제시장에 있는 고모네 가게에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더부살이하며 어머니는 삯바느질하고, 덕수는 동생을 업고서 천막 학교에도 다니고 구두닦이도 하면서 생계를 잇는다.

어느덧 청년이 되어 부두에서 막노동하던 덕수는 대학에 들어간 아우의 학비를 벌기 위해 독일 광부를 지원한다. 탄광의 갱도가 무너져 죽을 뻔한 사고를 겪기도 하지만 운 좋게 장차 아내가 될 간호사 아가씨까지 사귀고 무사 귀국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동생의 결혼비용이 필요하다. 그는 아내의 만류를 뒤로하고 다시 베트남 노무자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총격전이 벌어지는 전쟁터에서 물품을 수송하다 다리에 총상을 입고 목발을 짚은 채 돌아온다.

이산가족 찾기 소재의 국제시장

그 무렵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 벌어진다. 덕수는 아버지와 누이동생을 찾고자 애쓴 끝에 마침내 미국에 입양되어 사는 막내를 찾는 데 성공한다.

덕수야말로 곡절 많았던 한국 현대사의 고비를 빠뜨림 없이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인물이다. 어린 시절 6‧25 전쟁을 겪으며 혈육과 헤어지고, 피난지 부산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고,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과 베트남에도 다녀오고, 헤어진 혈육을 찾고자 이산가족 찾기에도 매달리다 보니 어느덧 머리가 하얀 절뚝발이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의 삶을 지배한 것은 아버지가 남겼던 마지막 말이다. 흥남 철수 때 아버지는 막내를 찾으러 배에 내리면서 이렇게 당부한다.

“내 없으면 장남인 니가 가장인 걸 알지야? 가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이 제일 우선이다. 가족들 잘 지켜라.”

그는 일생 이 말을 가슴에 담고 실천했다. 그의 아내가 “당신 인생인데 그 안에 왜 당신은 없냐고요!”라고 하소연하다시피 그의 삶에 ‘자신’은 없고, 오직 ‘가족’만 존재했다. 아버지의 당부대로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그래도 아무에게도 원망하지 않고 고생을 달게 받아들인다.

“내는 그래 생각한다.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기, 참 다행이라꼬.”

이것이 바로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이런 희생적인 아버지가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여유와 안락은 아버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결과임을 영화는 말해주었다.

영화 마지막에 일흔 살 덕수는 온 가족이 모여 손자들의 재롱을 보며 웃음꽃을 피우는 방을 홀로 빠져나온다. 그리고 자기 방에 가서 사진 속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다.

“아부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막순이도 찾았고예. 이만 하몬 내 잘 살았지예?”

이렇게 자랑스레 뇌까리던 그는 돌연 설움에 북받쳐 턱을 덜덜거리며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하고 흐느낀다. 평소 입버릇처럼 “괜찮다. 안 힘들다.”고 말해오던 그가 비로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가족을 위해 한 몸을 바친 아버지의 고백에 목이 메고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다.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

슬픈 이야기 속 경쾌한 장면

이 영화는 슬픈 이야기가 많지만 그렇다고 분위기가 어둡지만은 않다. 중간에 경쾌한 장면들이 끼어들어 울다 웃다 보면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 눈 깜짝할 새이다. 무엇보다 단짝 친구 달구와 찰떡궁합이 익살스럽기 짝이 없다.

덕수는 독일 광부로 가기 위해 달구와 함께 쌀가마 들기 체력시험에 임한다. 덕수는 쌀가마를 거뜬히 들지만 달구는 들지 못하고 주저앉은 채 “아직 땅에 안 닿았어요.”하고 우기는가 하면, 체력이 약하다는 면접관의 지적에 “제가 하체 중심으로 주로 운동을 하다보니까”하고 둘러댄다.

덕수 또한 광산 작업 경험이 없어 곤란하다는 말에 “저 군대 공병대 나왔습니다. 땅 엄청나게 파 제낐습니다.”하고 떼를 쓰다가 상황이 불리해지자 덕수와 함께 벌떡 일어나서 목청껏 애국가를 불러댄다. 그 임기응변 덕분에 그들은 ‘애국심 투철’로 통과된다.

그리하여 백마를 탈 속셈으로 독일에 간 달구가 여자에게 잘못 걸려 곤욕을 치르는 장면은 배꼽을 잡게 만든다.

영화 중간에 알 만한 인사들이 얼굴을 내비치는 것도 양념거리다.

구두를 닦는 어린 덕수에게 장차 배를 만들어 팔겠노라며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는 거야”라는 남기고 가는 젊은 사업가, 꽃분네 가게에 옷감을 보러 와서 “다가오는 제너레이션에서는 남녀 영역 파괴가 토픽이 될 거예요.”하고 말하는 혀 꼬부라진 의상디자이너.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씨름은 그리 많이 처묵는다고 잘 되는 기 아이고, 기술이 있어야 해.”하고 달구에게 훈수를 듣는 마산무학초등학교 5학년 씨름부 소년, 베트남에서 위험에 처한 덕수 일행을 구해주고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를 읊조리는 미남 군인 등이 영화를 더욱 감칠맛 나게 한다.

이 미남 군인과 만남으로 인해 앞부분에서 남진이 최고냐 나훈아가 최고냐 다투는 가운데 덕수가 유독 남진을 편들었던 까닭을 알 수 있다. 또 영화 초반에 덕수가 외국인 노동자를 희롱하는 젊은 학생들에게 야단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가 독일과 베트남에 가서 서러운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

황정민의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

무엇보다 <국제시장>을 이끄는 것은 주인공 배우 황정민의 명품 연기이다. 경상도 출신답게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는 장발의 청년 시절부터 머리가 하얗게 센 쭈그렁 노인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의 생애를 기막히게 그려낸다.

특히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서 화면에 비치는 누이동생을 향해 눈물이 뒤범벅된 낯으로 턱을 덜덜 떨어대며 “막순아!”를 외치는 모습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옛날 1983년 때의 흥분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그 장면에서 과연 눈물을 훔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나는 이 <국제시장> 말고도 그가 나오는 <신세계>(2013)와 <베테랑>(2015), <아수라>(2016)와 <공작>(2018) 등을 보며 황정민표 신들린 연기야말로 단연 대한민국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훈아가 부른 <남자의 인생>(2017)에 “전철 두 번 갈아타고 지친 하루 눈을 감고 귀는 반 뜨고 졸면서 집에 간다.”라는 구절이 있다.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아버지의 고단한 모습이다. 그래서 가족의 버팀목인 아버지란 존재는 평범하지만 위대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나는 주인공보다 조금 늦게 태어난 덕분에 전쟁이나 피란과 같은 고초는 겪지 않았다. 그래도 어린 시절 독일 광부나 간호사 파견, 월남 전쟁을 들으며 자랐고, 성인이 되어서 이산가족 찾기를 보았기에 영화의 모든 장면이 실감으로 다가왔다.

국제시장의 감동적인 조명

역시 공감이란 자기가 겪은 일을 보았을 때 커지는 것 같다. 감동 또한 공감에서 비롯된다. <국제시장>은 내 아버지의 이야기였고, 그동안 보고 들어왔던 이야기이기에 더욱 생생한 감동으로 모처럼 눈물을 훔치게 했다.

* 해당 내용은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장병호 영화이야기 [은막의 매혹]에서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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