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봉오동 전투

봉오동 전투,항일무장투쟁의 빛나는 쾌거

The Battle : Roar to Victory, 감독 원신연, 출연 유해진, 류준열, 최민식, 2019.

통쾌한 전쟁 영화의 새로운 지평

일본군과 싸워 이기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통쾌하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맺힌 한이 큰 까닭이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에 저들에게 당했던 만큼 어떻게든 그 치욕을 되돌려주고 싶은 것이 우리 민족의 공통심리일 것이다. 그래서 한일 간에 벌이는 운동경기는 어느 종목이나 기를 쓰고 응원을 하며 필승을 기원하는 것이다.

과거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1990)이나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2014)이 전에 없는 관객을 동원한 것도 일본을 혼내준 내용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역사적인 상처, 한일 관계의 고발

2019년 일본 아베 총리가 느닷없이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를 발표한 것은 한국 경제를 타격하는 기습공격이 아닐 수 없다. “너희들 혼나 봐라!”라는 그 고약한 심보에 대응하여 우리 국민은 “독립운동은 못 해도 불매운동은 한다!”라는 마음으로 일본 여행 안 가기, 일본 제품 안 사기 운동에 나섰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우리의 맺힌 가슴을 후련하게 씻어주는 청량제 영화 하나가 나왔다.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감동

원신연 감독의 <봉오동 전투>(2019)는 제목 그대로 일제강점기 독립군들의 무장투쟁 이야기이다. 국사 시간에 배운 바 있듯이 삼일운동 이듬해인 1920년 6월 북간도에서 벌어진 이 싸움은 같은 해 10월의 청산리 전투와 함께 항일독립투쟁사의 빛나는 성과로 손꼽힌다.

영화는 도입부에서부터 일본군의 만행을 보여준다. 독립군 토벌대인 그들은 두만강 국경지대에서 길 안내를 해준 소년 형제에게 답례로 먹을거리를 던져주는데, 그것은 음식이 아니라 폭발물이다. 보따리를 펴던 아우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다. 일본군은 또 옥수수를 가꾸는 조선인 민가를 급습하여 무차별 살육을 저지른다.

특히 월강추격대장 야스카와가 호랑이를 사로잡아 배를 가르는 장면은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죽어가던 호랑이가 고개를 쳐들고 포효하는 순간 대장은 칼로 목을 찔러 호랑이를 절명시킨다. 얼굴에 피를 둘러쓴 채 호랑이의 멱을 따는 그 무자비한 장면이야말로 조선을 삼키고 숨통을 조이던 당시의 상황이 아니겠는가.

흔히 봉오동 전투라고 하면 홍범도(洪範圖, 1868~1943) 장군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전면에 활약하는 인물은 장군이 아니라 칼잡이 황해철이나 총잡이 이장하, 도둑질하던 마병구 같은 민초들이다. 그들은 말이 독립군이지 훈련된 군인들이 아니다.

“우리가 쪽발이 쪽수는 대충 알아도 전국의 독립군 수는 알 수가 없어. 웬 줄 알어?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오늘은 독립군이 될 수 있다 이 말이야. 나도 원래 평안도에서 염소 키우던 인물이었어. 여기 군인이 한 마리라도 있으면 손들고 나와 보라우. 나라 뺏긴 설움이 우리를 북받치게 만들구 잡아 일으켜서 괭이 던지구 소총 잡게 만들었다 이 말이야.”

황해철의 말대로 당시 독립군이란 이름 없는 백성들이 망국의 설움과 의분으로 뭉쳐 총칼을 잡은 사람들이 그 실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왜놈들에 대한 적개심과 투지만큼은 물불을 안 가릴 만큼 뜨겁다.

영화는 독립군과 일본군의 쫓고 쫓기는 장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들은 산발적인 유격전을 펼치며 삼둔자(三屯子)와 후안산(后安山)을 거쳐 일본군을 봉오동 골짜기로 유인한다. 그리고 험준한 지세를 활용한 매복 작전으로 그들을 궤멸시킨다.

기록에 따르면 이때 일본군은 157명의 전사자와 200여 명의 부상자가 나왔다고 한다. 이에 반해 아군은 사망자 네 명에 부상자가 약간 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니 그야말로 대승이 아닐 수 없다.

봉오동 전투의 생동감

이 영화에서 아주 통쾌한 장면이 하나 있다.

일본군에 쫓기던 이장하가 산등성이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장면이다. 그는 미리 기관총을 땅속에 묻어놓고 적들을 그곳으로 유인한다. 개미 떼 같이 추격해 올라오던 일본군들이 난데없는 기관총 세례를 받고 바람맞은 수숫대처럼 우수수 쓰러진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단숨에 내려가는 대목이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일본군 대장과 장교 및 독립군의 포로가 된 소년병의 역할에 일본인 배우를 기용한 점이다. 우리에게 낯선 일본인 배우와 일본어 발성을 통해 극의 사실성을 높이려는 전략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조선놈들을 산 채로 잡아서 껍질을 벗기겠다!”라고 호언장담하던 일본군 대장과 그 부하 장교가 황해철이 휘두르는 칼의 제물이 될 때 관객이 느끼는 쾌감의 정도는 한국인 배역을 썼을 때와 확실히 다를 수밖에 없다.

특별히 흥미로운 배역은 아라요시 중위의 경우이다. 한국 배우가 그 역할을 맡았는데, 그는 독립군들에게 부하들을 잃은 뒤 일본군 대장에게 손가락을 잘리는 수모까지 당하고 다시 추격에 나선다. 그런데 그는 독립군을 쫓으며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용케 살아남는다. “내 저럴 줄 알았다.”라며 약삭빠르게 몸을 사리며 목숨을 부지해가는 비열한 인간형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홍범도 장군의 부재에 대한 의아함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별나게도 홍범도 장군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봉오동 전투라면 당연히 그 주역이 나와야 할 터인데 왜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가. 영화를 보다 보면 의아스러운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오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영화 초반 강변에서 삿갓을 눌러쓴 모습으로 잠깐 비치고, 독립군 참모 회의에서 뒷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봉오동에서 야스카와 대장의 말을 쏘아 쓰러뜨리며 사격의 시작을 알린 것도 바로 그였다. 그렇지만 얼굴을 내놓지 않아 누군지 알 수가 없다.

그는 전투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얼굴을 드러낸다. 그만큼 관객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장군의 존재감을 부각하려는 의도라 하겠다. 황해철이 무릎을 꿇고 절하는 장면에서 모든 작전을 그가 뒤에서 주도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부하들과 함께 산정에 올라가 산화한 독립군의 유골 가루를 먼 고향 땅을 향하여서 뿌린다. 그리고 흰 가루가 묻은 태극기를 펼쳐 들며 조국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보여준다. 그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은 그 어느 것도 아니고 오로지 조국을 위한 충정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봉오동 전투의 감동

<봉오동 전투>는 참으로 고마운 영화이다. 우리는 그동안 봉오동 전투에 대한 역사적 사실만 알았지 그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하였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일백 년 전 선인들이 흘렸던 피와 땀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물론 영화 매체의 특성상 얼마간의 허구적인 요소는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말로만 듣던 역사적인 장면을 개성 넘치는 인물들을 통해 실감나게 되살린 점에서 이 영화의 의의는 매우 크고 값지다고 하겠다.

마치며

* 해당 내용은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장병호 영화이야기 [은막의 매혹]에서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