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모래시계

모래시계, 소재주의의 한계

광주를 다룬 작품이라고 해서
무작정 환호할 일이 아니다.

The Sand Glass, 극본 송지나, 연출 김종학, 출연 박상원, 최민수, 고현정, 이정재, 1995.

드라마 모래시계

1995년 정초 장안을 뜨겁게 달구었던 텔레비전 드라마 <모래시계>(1995)를 처음 방영할 때에는 보지 못했다. 서울 쪽의 방송에서 하는 것이라 지방에 사는 나에게는 어디까지나 남의 동네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신문 지면을 통해 그 열기만 전해 듣는 정도였는데, 드라마 방영하는 동안, 서울 시민들의 ‘귀가 시계’를 앞당겼다는 소문에는 ‘도대체 어떤 드라마이기에?’ 궁금하기도 하고, 서울 사람이 부럽기도 했다.

다행히도 그러한 궁금증은 얼마 뒤에 해소되었다. 드라마가 막을 내리고 그것이 곧장 비디오테이프로 제작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비디오테이프로 출시된 것은 그동안 유례가 없었던 일로,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작품의 인기도를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모두 4부로 나뉜 이 드라마를 비디오 가게에서 차례로 빌려다 보았다.

그런데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나의 감흥은 생각했던 것만큼 대단치 못했다.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방영하는 동안 언론을 장식하던 찬탄 일변도의 기사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빛나던 광주, 무엇이 모래속에 감춰져 있었나

<모래시계>는 우석과 태수라는 두 젊은이의 상반된 삶과 운명적인 관계를 중심 줄거리로 한다. 여기에 혜린이라는 여자와의 로맨스가 곁들여지며, 권력의 암투, 조직 폭력배의 세계 등이 격동의 80년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학창 시절부터 사회생활까지 줄곧 모범생의 길을 걷는 우석, 그와 대조적으로 주먹 하나를 가지고 거친 세파를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태수.

이 두 친구가 나중에 검사와 죄수의 신분으로 마주 서게 되는 일은 실로 극적이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우석과 가까웠다가 나중에 태수를 사랑하게 되는 혜린이 운동권 여대생에서 카지노 여왕으로까지 변신하는 과정이며, 그 혜린의 신변 보호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재희의 순애보 등은 이 드라마의 재미를 더해 준다.

그런데 정작 <모래시계>가 많은 박수를 받은 것은 이러한 줄거리의 재미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오랫동안 금기로 여겨 왔던 5.18 광주항쟁을 그렸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신문 잡지에서도 이 점을 높이 사서 방영하는 동안 찬사를 보낸바, 있다.

광주항쟁의 그림자와 꿈의 간극

확실히 이 드라마에서 빛을 발하는 부분은 광주항쟁의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주인공 가운데서 한 사람은 계엄군으로, 또 한 사람은 일반 시민으로 광주의 현장에 끌어냈다. 그리고 그들의 활동을 통해 당시 광주 금남로에 벌어졌던 동족상잔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곤봉을 휘두르는 얼룩무늬의 군인들, 돌멩이로 맞서는 시민들, 검정 연기를 내뿜으며 불타는 차량, 그리고 복면 무장을 하고 트럭에 가득 올라탄 더벅머리 젊은이들…. 극 화면과 기록화면이 뒤섞이면서 열다섯 해 전의 절박했던 광주 상황이 실감이 나게 묘사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모처럼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줄 것 같던 광주 이야기는 잔뜩 기대감만 부풀려 놓고는 얼마 후 꼬리를 감춰 버린다. 그리고 달리는 말처럼 한 자리에 머무를 수 없다는 듯 삼청교육대를 잠깐 거친 다음, 곧장 카지노와 주먹패들의 세계로 빠져든다.

나는 광주 이후의 내용을 보고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광주 문제를 언급했으면 학살자들의 범죄행위를 고발한다든지, 항쟁에 목숨을 바친 자들의 의로운 행위를 기린다든지, 아니면 희생자들의 아픔을 깊이 있게 파헤친다든지, 희생자 가족의 한스러움이나 후유증을 조명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야기가 금방 바뀌어 버리니, 시청자들은 광주의 아픔일랑은 까맣게 잊고, 그 대신 권력층의 비리와 범죄의 세계에 시선을 빼앗겨 버린다. 과연 이 드라마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진실의 재조명 드라마

물론 <모래시계>의 주인공들이 광주의 비극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진압군으로 광주에 투입된 우석은 시위자들을 쫓으면서 자신의 행위에 갈등을 많이 느낀다. 그는 상관의 명령을 과감하게 따르지 못하고 항상 우물쭈물한 태도를 보인다. 태수도 처음에는 시끄러운 광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가려고 한다.

그러나 진압군의 만행과 후배의 죽음을 목격하고 더는 의분을 참지 못하고 시민군에 합류한다. 이 두 사람의 행위는 지극히 양심적이고 인간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항쟁을 겪은 뒤에 보여준 태도가 어떤가. 그들은 자신이 겪은 광주의 비극에 대해 아무런 의문을 표명하지도 않고 고뇌하지도 않는다. 광주에서 곤봉을 휘두르며 번민하던 우석은 그 양심을 버리지 않았다면 나중에 속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시민군에 가담했던 태수도 마찬가지다. 항쟁이 끝난 후 어떤 식으로든 희생자의 편에서 진상을 밝히는 데 관심을 두는 것이 논리상 맞지 않을까. 그들도 따지고 보면 광주의 피해자가 아닌가. 그런데 그들에게서 그러한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저럴까 싶게 광주의 일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다른 일에 몰두해 버리는 것이다.

결국, 광주의 비극은 이 두 주인공의 삶에 특별한 의미를 주거나 영향을 미치지 않은 셈이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광주에서 보여준 행위는 단순한 동정심의 발로이며, 인간적인 연민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하겠다.

그들은 광주에 개입하는 것부터가 주체적이지 못하고 우발적이며 사건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다. 그들에게 광주는 어쩌면 재수 없이 발을 헛디뎌 빠진 시궁창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상대방이 때리니까 나도 때리는 식으로 사태에 대응했다.

두 주인공의 태도가 이러할진대, 시청자들의 인식은 오죽할 것인가? 광주의 진상을 모르는 시청자들은 <모래시계>를 보며 왜 광주가 저렇게 시끄러워졌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무슨 연유로 공수부대가 도심에 뛰어들어 시민들에게 몽둥이질하는지, 또 시민들은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국군에 대항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드라마가 그러한 배경을 설명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광주 사건을 단순히 흥미의 대상이나 호기심의 차원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광주항쟁의 시대적 배경과 원인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학살자의 만행에 대해 공분하거나, 피해자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공감대가 마련될 수 없는 일이다.

<모래시계> 소재주의의 국면

결국, 5‧18 광주항쟁은 <모래시계>에서 한낱 흥밋거리로만 이용된 셈이다. 작가나 연출가는 광주 문제의 실상을 알리기보다는 시청자의 눈길을 끌려는 의도에서 광주를 잠시 빌렸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모래시계>는 어디까지나 멜로드라마이다.

그것은 종래에 감히 다루지 못했던 소재를 브라운관에 끌어들여 드라마의 소재를 넓힌 데는 공헌을 했는지 몰라도, 시대 현실에 수박 겉핥기식으로 접근함으로써 소재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드라마가 방영되던 때의 대중매체의 찬사는 얼마쯤 과장된 면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모래시계>에서 놓친 감동

그러므로 <모래시계>가 좀 더 진지한 드라마로 설 수 있으려면, 여러 사건을 백화점식으로 늘어놓고 눈요기만 시킬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 하나를 붙잡고 집요하게 파고들었어야 한다. 이왕 광주를 건드렸다면 적어도 그 시대적 배경과 배후세력을 암시적으로라도 드러내고, 시민들이 무장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를 파헤쳐 보여주었어야 하는 것이었다.

나아가서 항쟁으로 인한 상처와 그 후유증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의 아픔도 비추어 주었으면 좋았겠다. 그래야 시청자들이 광주 문제를 역사적 맥락에서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누가 옳고 그르며, 누구를 벌해야 하며, 왜 그해 5월이 우리가 풀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 과제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 1980년 5월 광주는 독재 권력 창출의 희생양이었다. 그런데도 광주는 아직도 국민의 오해와 편견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한 형편이다. 이런 광주가 단순한 흥밋거리로 취급되는 것은 광주에 대한 모독이요, 또 다른 왜곡일 수 있다.

광주는 결코 <모래시계>와 같은 눈요깃거리 드라마를 원치 않는다. 우리 국민은 좀 더 냉정해져야 한다. 광주를 다룬 작품이라고 해서 무작정 환호할 일이 아니다. 앞으로 광주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작품이 나올 때까지 <모래시계>에 대한 나의 아쉬움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마치며

* 해당 내용은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장병호 영화이야기 [은막의 매혹]에서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