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 환기미술관
김향안의 수필집 ‘월하의 마음’
수화(樹話) 김환기 화백의 부인이자 수필가인 김향안의 “월하(月下)의 마음”을 읽었다. 이 책은 김향안이 남긴 수필과 메모들을 모아 엮은 것으로, 그가 남긴 글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반 서점에서는 절판된 지 오래되어 구하기 힘들지만, 부암동에 위치한 환기미술관에서는 여전히 구매할 수 있다. 이 미술관은 김환기와 그의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변동림 김향안은 누구인가
김향안이 누구인가? 그녀는 단순히 한 명의 예술가의 부인으로만 기억되기에는 너무나도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 화가 구본웅의 이복동생이자, 소설가 이상의 미망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상이 일본의 병원에서 숨을 거두던 순간, 그의 마지막을 지켜본 이는 바로 그녀, 변동림이었다.
이후 그녀는 이름을 김향안으로 개명하고, 한국 현대 미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김환기와 결혼하게 된다. 김향안은 단지 미술평론가이자 수필가로서의 역할을 넘어, 예술가들과 함께한 시대를 살아낸 증인이자 기록자였다.
책을 펼치기 전, 독자는 자연스레 소설가 이상과의 이야기에 대해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책 속에서 이상의 이야기는 짧게 다루어져 있을 뿐이다. “이상(李箱)을 용서할 수 없었던 이유”와 “나 변동림은 이상의 소설 주인공이 아니다”라는 항변은 오히려 읽는 이로 하여금 묘한 서글픔을 자아낸다.
이상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그의 묘를 미아리에 안장시킨 사람은 바로 김향안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묘소마저 유실되었고, 이제는 이상의 흔적조차 찾기 어려워진 상황이 김향안에게는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김환기 화백과의 만남
김향안, 그녀는 단지 이상의 미망인이라는 수식어로 설명될 수 없는 삶을 살았다. 그녀의 인생은 또 다른 위대한 예술가인 김환기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김환기와 함께한 삶은 그녀에게 또 다른 예술적 영감을 주었고, 그들이 함께 한 부산 피난민 생활, 파리와 뉴욕에서의 생활은 그녀의 수필에 담겨 해방 전후의 시대상을 잔잔하게 그려냈다. 김향안의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닌, 그녀가 살아온 시대와 그 속에서의 감정들을 담아낸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환기의 예술 환기미술관
부암동에 위치한 환기미술관은 김향안의 이러한 삶의 일환으로 세워진 것이다. 김향안이 미술관을 세우기로 결심한 배경에는 김환기의 예술을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미술관 건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김향안은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고, 재정적인 문제도 그녀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환기미술관은 완성되었다. 그녀가 미술관의 터전을 잡기 위해 여러 날 동안 직접 부암동의 골목을 누비며 적합한 장소를 찾았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김환기의 예술적 영감을 기리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뜨거운 열정과, 그 열정이 부암동의 한적한 언덕에 피어오른 환기미술관이라는 결과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김향안의 삶과 예술
오늘날 부암동에 위치한 환기미술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김향안의 삶과 그녀의 사랑, 그리고 김환기의 예술이 담긴 하나의 작품으로 존재한다. 이곳에 가면 김향안의 삶의 흔적과 그녀가 남긴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 미술관을 세운 것은 김환기를 향한 깊은 사랑과 예술을 향한 존경의 표현이었다. 환기미술관을 방문하는 이들은 그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김향안의 이야기와 그녀의 인생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