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영화] 친구

Friend, 감독 곽경택, 출연 장동건, 유오성, 2001.

하와이로 가라.
거기 가서 좀 있으면 안 되겠나.
니가 가라. 하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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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친구, 그 섬뜩한 우정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세 가지가 불구경, 물 구경, 싸움 구경이라고 한다. 그중에 첫 번째로 재미난 것을 꼽으라면 어떤 것일까? 아무래도 싸움 구경이 최고가 아닌가 싶다.

폭력영화는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구경거리로 보여준다. 그래서 폭력영화 등장인물들은 웬만한 일은 말 대신 주먹으로 해결한다. 그들은 걸핏하면 주먹다짐이다.

식당에서 밥 먹다가도 주먹이 날아가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다가도 발길이 날아오며, 술집에서 술 마시다가도 맥주병이 깨지는가 하면, 야간 업소에서 춤추다가도 어느 순간 탁자가 뒤엎어진다. 각목이 날고 회칼이 춤을 추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이들 영화는 대개 시간을 죽이는 오락물이라 뒤에 여운 같은 것이 없다. 그저 주인공이 나쁜 놈들 때려주는 것을 통쾌하게 바라보며 박수 치다가 극장 문을 나서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다 보니 얼마쯤 지나면 ‘내가 저 영화를 봤었나?’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일도 없지 않다.

그런데 내가 아주 선명한 인상을 받은 영화가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오랫동안 몇몇 장면과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되살아나곤 했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2001)라는 영화이다. 왜 다른 영화는 곧바로 잊히는데 유독 오랜 시간 지워지지 않는 것일까?

우정과 배신

이 영화에는 준석, 동수, 중호, 상택 등 네 명의 젊은이가 나온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들은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소독 연기를 뿜어대는 방역 차를 쫓아다녔고, 바다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조오련이 하고 바다거북이 하고 둘이서 헤엄치기 시합하모 누가 이길 거 같노?” 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자랐다.

중학생 때 흩어졌던 그들은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나는데, 싸움 대장 준석과 그를 따르는 동수는 늘 사고를 쳐서 문제를 일으킨다. 그들은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자기네 여자 친구에게 집적대는 건달패를 패주는가 하면, 남의 학교 영화 단체관람에 끼어들어 극장에 갔다가 창틀을 빼 들고 대판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결국, 둘은 학교에서 제적을 당하고 조직폭력배가 되는데, 공교롭게도 소속이 같지 않다. 친구 사이지만 서로 경쟁 관계가 되어 결국 우정이냐 조직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영화 친구 스틸컷

경상도 사투리의 날 것 그대로

모범생 친구 상택이 유학을 떠나는 날, 준석이 동수를 찾아왔다.

경쟁 관계에 있는지라 마주 앉은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그래도 준석은 학창 시절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상택이 오늘 미국 간다더라. 내캉 배웅 갈래?”
“배웅? 그런 것도 하고 사나?”
동수가 코웃음을 친다. 준석의 속이 뒤틀릴 법하다.

“많이 컸네. 동수.”
“원래 키는 내가 더 컸다 아이가. 니 시다바리할 때부터.”
말투에 가시가 돋쳤다.

“간단하게 말할게.”
“복잡하게 말해도 된다.”
준석은 속이 상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담담히 말한다.

“하와이로 가라. 거기 가서 좀 있으면 안 되겠나.”
“니가 가라. 하와이.”

말이 먹히지 않자, 준석은 밖에 나와 차에 오르기에 앞서 피우던 담배를 빗물 고인 땅바닥에 떨어뜨린다. 그것을 신호 삼아 부하들이 동수를 덮친다. 무수히 칼을 맞은 동수는 “많이 뭇다 아이가. 고마 해라.”는 말을 남기고 절명한다.

그가 앞서 준석을 보내고 나서 부하에게 “공항까지 얼매나 거리노?”하며 마음을 돌린 터이기에 그의 죽음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재판정에 선 준석은 “제가 지시했습니다.”하고 범행을 순순히 자백한다. 나중에 면회를 온 상택이 눈물을 흘리며 “뭐 땜에 그랬노?” 하고 자백한 까닭을 묻자 “동수나 내나 둘 다 건달 아이가. 건달이 쪽팔리면 안 된다 아이가.”하고 대답한다.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 구차히 변명하지 않고 솔직담백하다. 그게 그의 멋이다.

1980년대의 교실 풍경

<친구>에서 가장 생생히 떠오르는 부분은 고등학교 교실 장면이다.

엉터리 발음으로 수업하던 영어 교사가 질문을 피하고자 책상 줄을 바꾸는 중호에게 “어이, 맨 뒤에 쥐 같은 새끼! 이사 댕긴다고 욕본다.”라며 그의 가방을 쏟고는 “이 자석 이거 학생 맞나?”하고 발바닥을 몽둥이로 친다.

또 다른 교사는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을 세워놓고 “아부지 뭐 하시노?” 하면서 뺨을 친다. 준석이 “건달입니다.”하고 사실대로 대답하자, 그것을 달리 받아들인 교사가 손목시계를 풀어놓고 본격적으로 주먹을 날린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 무렵에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광경이다.

나는 앞머리가 벗어진 그 교사가 진짜 학교 선생님인 줄 알았는데, 한참 지난 뒤에 텔레비전에 나온 것을 보고서야 배우인 줄 알았다.

또 한 사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인간이 은혜를 알아야 인간이 아이가. 호로자슥아.”하며 준석을 나무라고, 동수를 불러놓고는 “원래 건달의 역할이 뭐꼬? 그것은 바로 자신들은 비록 음지에서 살면서도 양지를 더욱 밝고 환하게 해주는 기 건달 아이가?” 하며 조폭론을 강의한다.

그도 이 영화에서 초면이었는데, 그 뒤 부쩍 성장하여 널리 얼굴이 알려진 배우가 되었다.

<친구>가 남긴 것

<친구>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야기가 주는 사실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그게 꾸민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등장인물들의 말이며 표정이며 행동들이 실제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 같아 오싹 소름이 돋곤 했다.

특히 날것 그대로의 경상도 사투리가 그리 섬뜩할 수 없었다. 보통사람들의 사투리는 한없이 정겨운데, 조폭들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어쩌면 그리도 무시무시한가.

“내가 우리 집이 제일 좆같다고 생각할 때가 언젠 줄 아나? 어릴 때 우리 집에 삼촌들이 많아서 참 좋았거든. 우리 엄마 입원하고, 내가 중학교 때 한 번 가출하고 돌아오니까 내가 삼촌이라 부르던 새끼 중에 한 놈이라도 내를 뭐라 하는 새끼가 없는 기라.

씨발, 그때 한 놈이라도 내를 패주기라도 했으모 혹시 내가 그때 정신 차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준석의 험상궂은 말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마치며

* 해당 내용은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장병호 영화이야기 [은막의 매혹]에서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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