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영화] 암흑가의 두 사람

사람을 믿어주지 않고
죄인 취급을 한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Deux Hommes Dans La Ville, 감독 호세 지오반니, 출연 알랭 드롱, 장 가방,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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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흑가의 두 사람

진심이 외면당할 때

사람이 제일 화가 날 때는 언제일까?

자기가 하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누구한테 욕을 먹을 때, 감쪽같이 속았을 때, 업신여김을 당했을 때, 부당한 일을 강요받았을 때 화가 날 것이다.

내 경우에 가장 많이 화가 날 때는 무엇보다 진심이 통하지 않을 때이다. 진정으로 말했는데도 상대가 그것을 믿어주지 않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인다. 그럴 때면 속마음을 열어 보일 수도 없고, 목소리를 높이며 해명을 해봤자 그게 모두 변명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고, 답답한 나머지 열이 바짝 올랐다.

어린 시절의 황당한 경험

어린 시절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사는 이웃에 빙수 장수가 살았다. 어느 날 아침에 보니까 아저씨가 장사를 나가기 위하여 빙수 기계에 얼음을 끼우고 있었다. 얼음을 끼워 넣고 기계를 돌리면 얼음이 잘게 깎이며 빙수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게 신기하여 가까이 가서 구경했다.

그러다가 빙수 통 옆에 빙수 떠 담는 숟가락 같은 것이 놓여 있기에 무심코 집어 들고 만져보았다. 그때 아저씨가 갑자기 “이 도적놈의 새끼! 왜 그걸 훔쳐 가려고 해?” 하며 눈을 부라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냥 호기심으로 만져본 것인데, 그는 훔치는 것으로 생각했다.

졸지에 도둑으로 몰린 나는 황당하고 억울하여 그만 울음이 터져 나왔다. 물건 좀 만져본 것을 가지고 도둑 취급을 하니 너무나 기가 막혔다. 나는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고, 그 뒤로 빙수장수 집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암흑가의 두 사람
암흑가의 두 사람 영화 스틸컷

영화 <암흑가의 두 사람>을 통한 생각

프랑스 영화 <암흑가의 두 사람(Deux Hommes Dans La Ville)>(1973)은 개과천선한 사람을 전과자라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상황을 그렸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지노는 은행 강도 혐의로 10년간 옥살이를 하고 보석으로 출소한다. 그는 헌신적인 아내와 호의적인 보호 감찰관 제르망의 관심 속에 어두웠던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마음먹는다.

그러나 예전의 일당들이 다시 자기들과 어울릴 것을 요구하고, 과거에 그를 검거했던 형사 그와트로는 의심의 눈초리를 버리지 않고 늘 주위를 맴돈다. 그는 지노의 주변 사람에게 조심하라고 주의 줄 뿐만 아니라, 직장에까지 찾아와 무슨 모의를 하느냐고 추궁하는 등 계속 지노의 신경을 건드린다.

급기야 어느 은행에 강도 사건이 일어나자 그것을 지노의 소행으로 넘겨짚고 집요하게 캐묻는가 하면 지인에게 거짓 증언을 강요하기도 한다. 이에 격분한 지노는 형사를 목 졸라 죽였다.

잘못된 과거를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자꾸 옛날의 과오를 들먹이며 죄인 취급을 한다면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주인공은 자동차 폐차장에 달려가서 폐기물을 때려 부수며 화를 풀기도 하지만 계속되는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마는 것이다. 착하고 평범한 사람도 자극을 거듭하면 폭발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장 발장을 뒤쫓는 자베르가 나오듯이 이 영화에서 주인공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는 그와트로 형사 역시 그에 못지않은 인물이다. 그래도 자베르는 선량한 장 발장에게 용서를 받지만 그와트로는 화가 난 주인공의 분풀이 대상이 되어버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매우 충격적이다. 사형 언도를 받은 주인공이 단두대 앞에 서는데, 몸이 묶인 채로 입에 담배가 물리고, 목 주위의 와이셔츠 깃이 가위로 잘리고, 동그랗게 파인 구멍에 목이 놓인다. 그리고 위쪽에 매달려 있던 육중한 칼날이 아래로 떨어진다. 그렇게 한 생명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이다.

주인공과 보호 감찰관의 관계

영화 제목 <암흑가의 두 사람>의 ‘두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주인공 지노와 그를 바른길로 인도하고자 애쓰는 보호 감찰관 제르망이다. 지노의 살인을 두고 제르망은 “인내심에서 졌다.”라고 술회하지만 마음잡고 참된 삶을 시작한 사람을 믿어주지 않고 죄인 취급을 한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영화를 본지도 어느덧 마흔 해가 넘었다. 세기의 미남 배우 알랭 들롱(Alain Delon)의 분노에 떠는 모습과 백발신사 장 가방(Jean Gabin)의 묵직한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처형 직전에 알랭 들롱의 겁에 질린 눈빛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흉악범만이 살인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자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의도하지 않았던 일을 저지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며

* 해당 내용은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장병호 영화이야기 [은막의 매혹]에서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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