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mido, 감독 강우석, 출연 설경구, 정재영, 안성기, 허준호, 2003.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을 때 남은 것은
정부에 대한 배신감과 저항심뿐이었다.
숨겨진 역사를 밝힌 실미도
강인한 남성상의 구현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2000)는 과거 정권에 의해서 덮여있던 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에 카메라를 들이댔다는 점에서 일단 혁명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찌 소문으로만 듣고 반신반의했던 북파공작원 훈련부대의 실체를 알 수 있으랴. 1960년대를 살았던 사람은 북한의 124군 부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968년 서른한 명의 북한 무장간첩단이 청와대를 위협했던 1․21사태의 주역들이 바로 남파공작원을 훈련하는 124군 부대 출신들이었다.
1968년 창설되어 1971년까지 존속되었던 684부대, 일명 실미도 부대는 바로 북한의 124군부대에 대응하여 우리 쪽이 만든 비밀부대였다. 이러한 이야기는 옛날 같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소재인데,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 이제 우리나라도 경색된 반공 이념의 굴레에서 상당히 자유로워졌음을 알 수 있다.
죽음을 건 훈련과 배신
<실미도>는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매우 극적인 면이 있다.
북한 무장간첩단의 청와대 습격 사건으로 혼쭐이 난 국가 권력기관에서는 실미도라는 외딴 섬에 비밀리에 북파공작원 훈련부대를 창설한다. 그리고 그 부대원은 일반 군인이 아니라 사회에서 흉악범죄를 저질러 더는 용납되기 어려운 사형수 또는 장기수들로 이루어진다.
부대원의 목표는 오직 하나, 평양의 주석궁에 침투하여 ‘김일성의 멱을 따오는 것’이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인 그들에게는 이 일은 마치 복권 당첨처럼 잘만 하면 사형수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신분이 뒤바뀔 기회이기도 하다. 그것만이 사회에 다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그들은 목숨을 걸고 혹독한 훈련을 견뎌낸다.
그런데 1972년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약속한 74 남북공동성명에 즈음하여 남북의 화해 분위기가 형성됨에 따라 정부의 대북정책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그리하여 부대 양성의 필요성이 없어진 권력기관에서는 부대의 존속에 부담을 느끼고 그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이 정보를 사전에 탐지한 그들은 폭동을 일으켜 부대장과 기간병을 사살하고 섬을 나온다. 그리고 버스를 탈취하여 청와대를 향해 돌진하다가 방어막을 친 국군과 교전 끝에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사회적으로 흉악범으로 취급되는 존재였으나 그들에게도 강렬한 갱생 의지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국가에 공을 세워 과거의 죄를 면제받고 떳떳한 삶을 살고자 하는 일념으로 국가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그러나 그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을 때 남은 것이 정부에 대한 배신감과 저항심뿐이었다. 그것은 당연히 촉발될 수밖에 없는 원초적인 감정이리라.
<실미도>는 우리나라 최초로 1천만 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영화의 흥행 비결은 무엇일까. 영화의 어떤 점이 우리나라 4분의 1에 해당하는 인구로 영화관을 찾게 하였을까. 나는 이 영화의 미덕을 다음 몇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사회적 소외자들의 저항과 남성성 회복
우선 이 영화는 감추어졌던 역사적 사실을 들추어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영화는 과거 독재정권에 의해 철저히 은폐되었던 사실을 건드린 만큼, 일단 금기의 사실에 대한 호기심이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물론 극적 효과를 위하여 허구적인 요소를 가미한 부분이 없지는 않겠으나 기본 뼈대는 역사적 사실이고, 숨겨왔던 내용인 만큼 비장미까지 곁들여져 호소력을 발휘했다고 본다.
다음으로 사회적으로 소외된 부류의 저항을 들 수 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중죄인이라 할지라도 인간적인 삶을 향한 근원적인 욕구가 있다. 그들에게 “낙오자는 죽인다.”고 윽박지르며 비인간적인 훈련을 시킨 것까지는 좋았다고 치자.
그런데 나중에 쓸모가 없어지니까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해 버리려는 국가권력의 횡포는 마땅히 공분을 일으킬 만한 부분이다. 인간을 하나의 소모품으로 대하는 비정한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과 분노가 관객의 공감대를 자극했다고 볼 수 있다.
개성 넘치는 인물과 극적인 갈등
또한, 이 영화가 전형적인 남성영화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오늘날 남성의 권위가 점차 추락하면서 여성에게 휘둘리는 왜소해진 남성을 그린 영화가 힘을 얻고 있는 추세이다. 중국과 일본에까지 인기를 얻은 <엽기적인 그녀>(2001)나 <나의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2004) 따위가 그 보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실미도>는 거친 언어와 억센 행동이 난무하는 남성의 세계를 다룸으로써 영화 전편에 강인한 남성적인 에너지가 폭발하고 있다. 이처럼 박력 넘치는 남성의 세계를 통해 오늘날의 잃어버린 남성성을 되찾아주고 있는 점도 이 영화가 지닌 미덕의 하나가 아닐까.
특히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개성적인 인물 창조이다. 부대장 김재현 준위와 조 중사의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을 보라! 부대장의 철저한 책임감과 사명감 넘치는 군인정신, 조 중사의 냉철하고 단호하면서도 한편으로 부하를 아끼는 인간애는 남성 다운 매력을 한껏 증폭시킨다.
더욱이 이 영화는 인물 간의 갈등 관계를 대립적으로 잘 살리고 있다. 사사건건 부딪치며 으르렁거리는 주인공 인찬과 상필의 자존심 대결, 부대장의 참모인 조 중사와 박 중사의 상반된 가치관과 상황인식, 상부 기관의 부당한 명령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부대장의 항의 등은 이 영화의 극적 긴장 관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젊은 기간병이 나이 든 훈련병을 아저씨라 부르면서 서로 인간적인 친분을 쌓게 되지만, 나중에 거사 때에는 눈물을 머금고 그를 사살해야만 하는 대목 따위는 영화가 인간 내면의 미세한 감정까지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음을 보여준다.
부족한 훈련 묘사 실미도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
이를테면 부대원들의 북한 공작 훈련이 오로지 체력훈련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려면 강도 높은 체력훈련이 필수적이겠지만 어찌 북파공작원의 활동이 체력만 가지고 성공할 수 있겠는가. 북한의 민간 생활풍습을 익힌다거나, 북한의 말투를 연습한다거나, 북한에 관한 지리 공부나 주석궁을 침투하는데 필요한 모의훈련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영화는 오로지 산악달리기, 철조망 꿰기, 줄타기, 수중훈련 등으로 일관할 뿐 기타의 다양한 훈련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리고 훈련 과정을 모두 마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에 북한으로 출동하는 장면도 매우 무모해 보인다. 별다른 장비도 없이 보트에 나눠 타고 출동하는데, 그렇게 엉성하게 떼로 몰려 침투했다가는 북쪽 해안에 닿기도 전에 발각되어 모조리 물귀신이 되고 말 것이다.
무모한 결말 실미도
특히 아쉬운 점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다.
실미도 부대 사건이 종료된 후, 이 사건에 대한 보고서가 중앙정보부 기밀실에 깊숙이 보관되는 것으로 영화가 끝이 난다. 그런데 보고서가 그렇게 보관되는 것으로 끝나는 장면은 그들의 억울한 삶이 거기서 완전히 묻혀버리는 의미로 보이기 쉽다.
그것보다는 당시 실미도 부대원의 생존자가 그들의 어두운 과거사에 대해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한다든지, 그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외로운 투쟁을 한다든지, 아니면 당시에 희생된 부대원의 가족들이 그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려고 항의 시위를 한다든지 하는 방향으로 그렸다면 관객들에게 더 큰 문제의식을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함으로써 옛날의 비극적 사건이 그 자체로 종결된 것이 아니라,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미도 사건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아직껏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는 것이며, 이는 오늘날 우리가 새로이 풀어야 할 과제임을 좀 더 명확히 인식하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
마치며
* 해당 내용은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장병호 영화이야기 [은막의 매혹]에서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