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영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Does Cuckoo Cry at Night, 감독 정진우, 출연 이대근, 정윤희, 윤양하, 최봉, 1981.

토속적 에로티시즘의 매혹. 나 어렸을 때 엄마가 저 소리를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토속적 에로티시즘의 매혹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1980년대 에로 영화의 등장

1980년대 들어 우리 영화에 느슨해진 부분이 하나 생겼다.

여성의 신체 노출에 대한 엄격했던 규제가 완화된 것이다. 외국영화에나 볼 수 있던 여성의 벌거벗은 몸매를 우리 영화에서 본다는 것은 그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섹스(Sex)와 스포츠(Sports)와 스크린(Screen)이라는 전두환 군사정권의 3에스 정책에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어쨌든 표현의 자유가 주어졌다는 것은 영화계에서 박수를 칠 만한 일이었다.

눈요기에 그친 에로 영화의 한계

그리하여 봇물 터지듯 쏟아진 영화가 <애마부인>(1982)을 비롯하여 <산딸기>(1982)와 <뽕>(1985), <어우동>(1985)과 <변강쇠>(1986)와 같은 것들이었다.

이들은 청소년 관람 불가인 까닭에 ‘성인영화’라 부르기도 하고, 에로티시즘을 표방한다고 해서 ‘에로영화’ 또는 ‘에로물’이라 불렀으며, 관객들의 반응이 괜찮았던지 같은 제목에 줄줄이 일련번호를 붙여 연작물을 만들어댔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것들은 대부분 여자 배우의 몸매에 초점을 맞춘 눈요기용이어서 그 내용이나 완성도 등 작품의 질에서는 그다지 보잘것없었다.

자연 속에서 피어나는 순수함과 욕망

이런 가운데 괜찮은 영화가 하나 나왔다. 정진우 감독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1)였다. 정비석의 단편소설 <성황당>에서 뼈대를 가져왔는데, 여주인공의 육체적 매력을 통해 선정성과 토속성이 잘 표현되었다.

주인공 현보는 산속에 숯을 구우며 사는 노총각이다. 그의 노모는 아들의 색싯감을 점지해달라고 늘 성황당에 비는데, 과연 효험이 있었던지 어느 날 꾀죄죄한 계집애 하나를 얻게 된다. 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열두 살짜리 계집애는 그 집에 살면서 처녀로 자라 자연스레 현보의 색시가 된다.

이때 처녀가 된 순이가 짧은 베적삼 하나만 걸치고 허리를 드러낸 채 사슴처럼 숲속을 뛰어다니는 모습이며, 숯가마 앞에서 가슴이 드러날 듯 말 듯 도끼를 쳐들고 장작을 패는 모습은 무척이나 고혹적이다.

특히 계곡물에 뛰어들어 알몸으로 미역을 감는 장면은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적인 환경에 묻혀 아무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자연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파국을 향하는 비극적 서사

그런데 이들에게 산림 주사가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는 현보의 색시에 흑심을 품고 화장품을 사다 주며 유혹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자 현보를 산림법 위반으로 잡아 가둔다. 그리고 혼자 있는 순이를 강탈하려다가 칠성이가 나타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만다.

현보의 친구 칠성이는 예전부터 순이에게 마음이 있었던지라 자기와 함께 산을 내려가 같이 살자고 한다. 순이는 그를 따라나섰다가 도중에 마음이 내키지 않아 발길을 되돌린다. 그리고 산으로 돌아와 홀로 숯을 굽고 살던 어느 날 산림 주사가 다시 집에 찾아온다. 순이는 원망과 증오심으로 남자를 끌어안고 함께 숯가마 속에 몸을 던진다.

영화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이 영화의 서사적 얼개는 순수한 인물과 타락한 인물의 대결이다. 그것은 자연과 문명의 대결로도 볼 수 있다. 아담과 이브처럼 사는 산속의 젊은 남녀가 자연을 대표한다면 불순한 욕정으로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 산림 주사는 세속적인 문명을 대표한다.

현보 내외가 산속에서 오순도순 아들딸 낳고 오래도록 살았으면 좋으련만 속된 문명 세상이 그렇게 놓아두지 않는다.

미학적 가치와 토속적인 매력

이 영화는 여러 가지 미덕을 갖추고 있다.

우선 탄탄한 서사구조 속에 산골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숯을 만들어 파는 숯장수의 생활이 꽤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송아지를 걸고 치르는 추석날 씨름대회라든지, 주인공이 도끼질하면서 산이 떠나가도록 내지르는 타령이나 기분 좋을 때 흥얼거리는 민요 같은 것도 영화의 토속성을 잘 보완해준다.

황소처럼 투박한 현보의 모습도 억척스러운 촌부의 성격을 잘 구현해낸다. 아울러 보는 이를 감질나게 하는 여주인공의 싱싱한 육체적 매력과 더불어, 장터에서 손거울과 은가락지에 눈을 떼지 못하고, 산림 주사가 사다 준 ‘구리무’와 박하분에 마음이 흔들리는 순이의 심리묘사 또한 탁월하다.

별다른 기복이 없이 순탄히 흘러가던 산속의 일상에 산림 주사는 큰 파란을 일으킨다. 순이를 호시탐탐 노리던 그는 계곡에서 목욕하는 여자의 옷을 앗아 들고 끈질긴 욕심을 드러낸다. 그가 물속의 여자에게 얼른 옷을 주지 않고 애를 태우는 장면은 선녀와 나무꾼을 연상시키며, 영화에서 가장 선정성이 고조된다.

그리고 막판에 가서 맨몸의 순이가 남편이 사준 은가락지를 낀 채 원수를 껴안고 죽는 장면은 큰 놀라움을 준다. 그는 평화롭던 자기 가정을 깨뜨린 자를 그와 같이 자기 몸을 던져 응징한 것이다.

영화 제목에 담긴 의미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라는 영화 제목은 당시로써는 대단한 파격이다. 그것은 여주인공의 어린 시절 사당패였던 그의 어미가 밤중에 뻐꾸기 소리를 신호 삼아 잠든 아이를 놓아두고 마실을 가서 몸을 파는 데서 비롯되었다. 어느 날 밤 순이는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남편에게 말한다.

“나 어렸을 때 엄마가 저 소리를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나하고 같이 자다가도 엄마는 뻐꾸기 소리만 들리면 금방 부리나케 뛰쳐나가곤 했어요. 그래서 엄마는 뻐꾸기 우는 소리를 참 좋아했었는가 보다 생각했었는데 그게 우스운 소리 같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어요.”

혼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과거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제목 설정은 영화 초반 송이버섯이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며 어린 순이가 처녀로 바뀌는 것과 같이 감독이 장치해놓은 성적 함의로 볼 수 있다.

정진우 감독의 영화 세계

이 영화를 만든 정진우 감독은 <심봤다>(1979)를 비롯하여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1983), <자녀목(恣女木)>(1985)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우리의 토속적인 정서를 즐겨 그렸다.

여기에 에로티시즘이 첨가됨으로써 그의 영화는 더욱 성가를 높였으며, 그 출발점이 바로 이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가 아닌가 싶다.

마치며

* 해당 내용은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장병호 영화이야기 [은막의 매혹]에서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