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영화] 벤허

Ben Hur, 감독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출연 잭 휴스턴, 토비 켐벨, 모건 프리먼, 2016.

2016년 신작 벤허. 두 시간짜리로 줄이다 보니 필수적인 부분만 살리고 나머지는 과감히 생략했다. 그 결과 압축미와 속도감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1959년 명작과의 비교 불가능성 그리고 재현 불가의 웅장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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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허

1959년 명작과의 비교 불가능성

‘그 영화를 어찌 다시 만들었단 말인가?’

지난 초가을 <벤허(Ben Hur)>(2016) 신작이 개봉된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믿기지 않았다.

이 영화가 처음 나온 것은 1959년이다. 따져보면 지금으로부터 까마득한 57년 전 일이다. 당시는 흑백영화에서 막 천연색영화로 옮겨가던 무렵으로 영화 제작기술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규모나 배역이나 기술이나 완성도 면에서 너무나 탁월했기 때문에 다시 누가 만든다고 하더라도 이를 뛰어넘을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을 해오고 있었다.

<벤허>야말로 세계 영화사에 남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아닌가.

이 영화 한 편을 만드는데 당시 보통 영화 제작비의 다섯 배에 달하는 1,500만 달러가 들어간 점도 그렇고, 10년간의 제작 기간에 10만 명의 출연자가 동원된 점도 그러하며, 한 마디 이상의 대사가 있는 출연자만도 496명에 달한다고 하니 대작 중의 대작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더욱이 이 영화는 1960년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하여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 등 무려 11개 부문을 독차지했다. 또한, 70밀리 대형화면에 장장 세 시간 42분에 달하는 상영시간도 다른 영화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록이다.

특히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 전차경주 장면을 찍기 위해 1만 5천 명의 인원이 4개월간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시사회를 마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감격에 찬 나머지 “하나님! 정녕 제가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까?” 하고 외쳤다는 일화도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질 만한 일이었다.

스무 살 무렵에 본 1959년 벤허

나는 스무 살 무렵이던 1970년대 초반에 이 영화를 보았는데, 그때의 벅찬 감동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노예로 끌려간 주인공이 함선 밑바닥에서 노를 젓다가 해전 중에 구사일생 위기를 벗어나 사령관을 구하는 장면과 전차경기에 출전하여 네 마리의 백마가 끄는 전차를 몰며 옛 친구의 흑마 전차와 흑백대결을 펼치는 장면은 어찌나 박진감이 넘치든지 조마조마한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목마를 때 한 바가지의 물로 목을 축여주던 생전의 그리스도와 은혜를 주고받는다든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모친과 누이가 때마침 쏟아지는 빗물에 씻겨 나병이 치유되는 기적적인 장면도 신비감과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그 밖에도 영화 초반부에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가 창을 던져 한 자리에 꽂아 넣는 장면이라든지, 상대의 팔을 감고 우정의 축배를 드는 장면이라든지, 우람한 몸매로 노를 젓는 주인공의 시퍼렇게 이글거리던 분노의 눈빛이라든지,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뒷모습만으로도 존재감이 빛나던 예수의 등장 따위도 참 인상 깊었다. 그래서 나는 <벤허>를 내가 보아온 영화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엄지를 꼽아 왔다.

그런데 바로 이 영화가 2016년 새로 제작되었다고 하니 어찌 관심이 가지 않겠는가! 앞서 나온 작품과 어떻게 다르게 만들었을까? 나는 맞선 보는 총각처럼 설레는 가슴을 안고 극장으로 달려갔다.

[그 시절 영화] 벤허 1

2016년 신작 벤허

새 영화 <벤허>는 감독이 티무르 베크맘베토브(Timur Bekmambetov)라는 사람인데, 처음 듣는 이름이다. 잭 휴스턴이라는 주연배우와 나머지 인물들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다. 눈에 익은 얼굴이라고는 유일하게 아프리카인 족장으로 나와 주인공의 전차경주를 후원하는 모건 프리먼뿐이다. 감독과 배우의 지명도가 영화의 질을 따지는 기준은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대개 우리는 과거의 작품 활동을 통해 감독이나 배우들의 역량을 가늠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이번 영화도 대단히 짜임새 있게 만들어졌다. 되도록 전작(前作)을 답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눈에 띈다. 이를테면 도입부에서 벤허와 메살라가 말타기를 하며 우정을 쌓는다든지, 낙마한 주인공이 회복될 때까지 메살라가 극진히 정성을 쏟는다든지, 벤허의 여동생과 메살라와 애정 관계가 두드러지게 묘사된다든지, 또는 한미한 가문 출신인 메살라가 출세를 위해 로마행을 자원하고, 전쟁터를 전전하며 공을 쌓는 장면 같은 것들은 앞선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다.

특히 전작과 달리 그려진 것은 주인공이 로마군에게 끌려가는 계기가 되는 부분이다. 전작에서는 누이가 옥상의 기왓장을 떨어뜨려 부임하는 총독에게 상해를 입히는데, 여기서는 점령군과 싸우다 몸을 다쳐 주인공의 집에 피신해 있던 비밀결사 조직원이 총독을 공격하는 것으로 나온다. 사건의 필연성을 높였다고 보겠다.

생략된 부분도 눈에 띈다. 앞의 영화에서는 해전 중에 주인공이 함대 사령관을 구한 인연으로 그의 양아들로 들어가 신분 상승하는 내용이 있다. 새 영화에서는 그 부분이 통째로 빠지고, 대신 주인공이 끊어진 돛대를 붙잡고 표류하다 아프리카인 족장에게 구출되는 것으로 처리된다. 네 시간에 가까운 영화를 두 시간짜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생략이 불가피했으리라.

사실 전작에서는 의아스러운 대목이 있었다. 해적의 공격을 받아 주인공 덕분에 목숨을 건진 함대 사령관이 느닷없이 개선장군으로 돌아오는 부분이다. 분명히 배가 박살 나고 침몰하여 패전한 것으로 알았는데, 어떻게 승리를 했단 말인가!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옥에 티가 없다.

2016년 벤허: 전작과의 차이점

전작과 다른 부분이 또 있다. 새 영화에서는 예수가 정면으로 등장한다. 로드리고 산토로(Rodrigo Santoro)라는 브라질 출신의 배우가 맡았는데, 예수를 빼다 박은 모습이다. 그렇지만 전작과 같은 절대자로서의 신비감은 떨어진다. 많은 영화에서 그러하듯이 여자의 나신 같은 경우도 그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보다 은밀히 가림으로써 효과를 거두지 않는가.

새 영화에서 가장 차별화되는 것은 끝부분이다. 앞의 작품에서는 메살라가 전차경기에서 죽지만 여기서는 살아나서 주인공과 화해를 하고 예전의 우정을 되찾는다. 전차경주 때 그토록 목숨을 걸고 다투던 그들이 어찌 곧바로 앙금을 털고 친해질 수 있단 말인가.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기독교 정신을 바탕에 둔 영화로서 화해와 용서라는 주제를 구현하려는 방편이 아닌가 싶다.

앞서 보았듯이 새로 만든 <벤허>는 앞의 영화를 베꼈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상당히 애썼음을 알 수 있다. 두 시간짜리로 줄이다가 보니 필수적인 부분만 살리고 나머지는 과감히 생략했다. 그 결과 압축미와 속도감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를 아무리 곱씹어 봐도 전작을 넘어섰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우선 주연 배우들이 풍기는 중후한 무게감이 앞 작품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친구이자 적수인 두 사나이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과 대결 의지가 그리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또한, 함선 밑창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빠져나오는 장면이나 생사를 걸고 싸우는 전차경주 장면에서도 가슴이 별로 조마조마해지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아마 전작으로 인해 형성된 기시감(旣視感)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만약 요즘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이번 작품을 먼저 보게 한 다음 예전 것을 보여준다면 어떨까? 예술작품의 감상이란 대단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어느 시기에 보았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에 접했기에 <벤허>는 나에게 최고의 영화로 남았고, 찰턴 헤스턴과 윌리엄 와일러 감독은 최고의 배우와 감독으로 기억되어온 것이다. 당시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소설을 쓰듯 공책에 영화의 줄거리를 고스란히 적어봤던 것도 벅찬 감흥을 주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리라.

젊은 시절 벤허 감상과 깊은 인상

고난과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한 남성상을 보여주는 영화, 배신과 복수, 은혜와 보은, 화해와 용서, 믿음과 구원의 다채로운 주제를 아우르는 영화, 새로 나온 <벤허>를 보면서 옛날의 감동을 되새기는 시간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앞 작품의 웅장함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마치며

* 해당 내용은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장병호 영화이야기 [은막의 매혹]에서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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