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영화] 무사

The Warriors, 감독 김성수, 출연 정우성, 주진모, 안성기, 장쯔이, 우영광, 2001.

손천용과 그 일행은 귀양 보내진 사실만이 전해질 뿐 고려로 돌아온 기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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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사 : 땀 냄새가 주는 묵직함

한국 무술 영화의 희귀한 걸작, 영화 <무사> 심층 분석

우리나라는 사극영화는 많아도 무술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이웃 나라와 견주어보면 더욱더 그렇다. 돌아보면 <왕의 남자>(2005)를 비롯해서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와 <관상>(2013), <명량>(2014)과 <남한산성>(2017) 같은 것들은 모두 역사적 배경을 가진 것들이지만 무술영화는 아니다.

겨우 찾아보자면 <귀천도>(1996)를 시작으로 <비천무>(2000)와 <청풍명월>(2003), <무영검>(2005)과 <중천>(2006), <군도>(2014)와 <협녀, 칼의 기억>(2015) 등 얼마 되지 않는다.

중국에서 <황비홍>(1991)과 <동방불패>(1992)를 비롯하여 <신용문객잔>(1992)과 <동사서독>(1994), <서극의 칼>(1995)과 <와호장룡>(2000), <영웅>(2002)과 <연인>(2004), <엽문>(2009)과 같은 걸출한 무협영화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생각할 때 큰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사 : 한국 무술 영화의 자존심, 그 특별함에 대하여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된 무술영화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하나 나왔다.

바로 김성수 감독의 <무사(武士)>(2001)이다. 고려 말엽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고려인들이 고국에 돌아오는 과정을 그렸는데, 정우성과 안성기, 주진모와 같은 국내 배우와 중국 배우 장쯔이(章子怡)가 출연한다. 전편을 중국 현지에서 촬영한 점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황량한 사막과 고성에서 벌이는 전투 장면과 더불어 등장인물의 개성과 심리가 살아 있고 갈등구조가 치밀한 점이 돋보인다.

역사적 배경이 빚어낸 드라마: 고려 말, 격동의 시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고려 우왕 무렵 고려왕조가 기울어가는 때이다. 중국도 원나라가 쇠퇴하고 명나라가 힘을 쓰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당시 고려는 공민왕 시해와 명나라 사신 살해사건으로 명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고려에서 보낸 사신이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영화는 <고려사>에 기록된 바로 그 사실을 근거로 만들었다.

숨 막히는 줄거리: 사신들의 생존을 위한 사투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고려의 사신단이 명나라에 갔다가 난데없이 첩자로 몰려 귀양길에 오른다. 도중에 원나라 군사들의 습격을 받아 명군 호송병들은 모두 죽고 그들만 살아남는다. 그들은 할 수 없이 고국으로 돌아갈 작정을 하고 사막을 가다가 외딴 마을에서 원나라 군사들에게 납치당한 명나라 공주를 보게 된다.

일행을 이끌던 용호군 장수 최정은 공주를 구하면 명나라에 공을 세우고 무사 귀국에 도움이 되겠다는 계산을 한다. 그리하여 매복 기습 작전으로 공주를 구해내지만, 그때부터는 원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공주는 자기를 해안까지 데려다주면 귀국할 수 있는 배를 제공하겠노라고 말한다.

이에 그들은 숱한 난관을 뚫고 공주를 바닷가의 고성에까지 호송한다. 그러나 공주를 빼앗긴 원나라 군사들이 그대로 있을 리 없다. 그들은 거기에서 생사를 가르는 일대 격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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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 액션: 판타지가 아닌 현실적인 무협

<무사>의 가장 큰 미덕은 사실성이다. 결투하는 장면에서 하늘로 날아오르거나 기상천외한 무공 따위를 발휘하는 일이 없다. 중국영화에서 익히 보듯이 무용을 하듯 칼을 휘두르고 손바람으로 조화를 부리는 장면은 기발하고 멋지기는 하지만 황당무계하다.

그렇게 호풍환우 하는 일이 현실적으로는 가당찮음을 빤히 알기 때문에 눈요깃거리로는 좋으나 감동이 따르지 않는다. 그에 반해 <무사>는 과장하거나 허황한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 까닭에 오히려 땀 냄새 나는 사실감과 묵직한 감동이 느껴지는 것이다.

매력적인 캐릭터: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향연

특히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매력이다.

치렁치렁한 긴 머리와 검은 복장을 한 여솔은 신비에 싸인 인물이다. 부사 이지헌의 노비로 주인을 그림자처럼 호위하는 그는 초반부에는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부사가 죽고 그 시신을 거두면서 차츰 존재감을 드러내고 영화의 주동 인물로 자리 잡는다. 그는 벙어리처럼 과묵하지만, 의협심과 과단성이 있으며, 특히 창술에 능하다.

항상 긴 창을 항상 들고 다니는 그는 외딴 마을에 갔을 때 한 색목인이 부사의 시신에 놀라 욕설을 내뱉자 그 자리에서 목을 날려버린다. 숲속 전투에서 적이 공주의 목에 칼을 대고 위협할 때도 번개 같은 창 솜씨로 그의 이마를 뚫는다. 공주가 그에게 의지하는 만큼 그 또한 공주를 위하여 몸을 사리지 않는 충직함이 그의 매력이다.

왕실 경호대 출신의 최정은 갑옷 입은 장수로서 기개와 권위를 잃고 싶지 않은 인물이다. 무인 정신이 투철한 만큼 그는 고집스러워서 독단적으로 무리를 통솔하면서 마찰을 빚곤 한다. 그가 적의 수중에 있는 공주를 구출한 것은 공을 세우기 위한 명분도 있지만 젊은 사내로서 공주의 미모에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 아닐까.

사진출처 : 한국영상자료원 캡처

홍일점인 공주 부용은 비록 포로로 끌려다니는 신세지만 도도하다. 최정에게 구출된 그는 원군에 쫓기다가 수레를 잃어버리고 나서도 걸으려고 하지 않고 탈것을 요구한다. 할 수 없이 그들은 나무를 베어다가 가마를 만들어 태운다. 한없이 여리면서도 야멸찬 그는 최정과 여솔 사이에서 끊임없는 긴장 관계를 형성하며 결국 두 사내를 전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든다.

아울러 최정의 부관 가남과 국경지대 방위대인 주진군의 하급무사 진립, 원나라 장수 람불화도 눈에 띄는 인물이다. 칼날이 넓적한 대도를 쓰는 가남은 용맹하고 믿음직스러우며 상사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주진군 소속 진립은 활 솜씨가 일품인데, 비록 지체는 높지 않지만 지긋한 나이에 걸맞게 사려 깊고 노련하여 일행으로부터 높은 신망을 얻는다.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원나라 장수 람불화는 묵직한 모습으로 시종 위압감을 준다. 그는 여솔의 빼어난 무술을 알아보고 그를 아끼는 일면이 있다. 그 밖에도 약삭빠르고 처세에 능한 역관 주명과 천축 순례에서 돌아오다 일행이 된 승려 지산은 서로 말씨름을 하면서 당시 유교와 불교의 대립상을 보인다.

거대한 스케일과 장인 정신: 감독의 노력과 열정

광활한 중국의 사막과 황무지를 배경으로 피 터지게 사투를 벌이는 <무사>는 거친 남성미가 풍기는 영화이다. 여자 하나를 놓고 사내들이 각축을 벌이는 모양새가 여왕벌을 둘러싼 수벌처럼 딱하기는 하지만 한 장면 한 장면마다 감독과 배우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기에 필름이 돌아가는 두 시간 반이 아주 옹골차다.

이 영화를 찍는 데에 53억 원의 제작비, 5개월간 112회의 촬영 횟수, 1만 킬로미터가 넘는 중국 동서 횡단, 현장 제작진 300명, 현장 진행 카메라 4대, 촬영 때마다 차량 동원 60대 등의 물량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 숫자도 엄청나지만,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고자 노력한 감독의 진지한 장인정신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손천용과 그 일행은 귀양 보내진 사실만이 전해질 뿐 고려로 돌아온 기록은 없다.”라는 <고려사>의 기록 한 줄을 가지고 이렇게 대작을 꾸며낸 감독에게 감탄과 경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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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 해당 내용은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장병호 영화이야기 [은막의 매혹]에서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