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영화] 대호

The Tiger, 감독 박훈정, 출연 최민식, 정만식, 김상호, 성유빈, 2015.

호랑이와 일본군의 대결은
곧 조선과 일본의 대결을 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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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영화 대호 – 조선인의 얼, 그 마지막 자존심

대호 속 조선의 얼과 호랑이의 상징성

박훈정 감독의 <대호(大虎)>(2015)는 조선 호랑이에 관한 영화이다. 그런데 포스터를 보면 호랑이 모습은 보이지 않고 시꺼멓게 그을린 주연배우 최민식의 얼굴만 크게 부각 되어 있다. 그나마 얼굴 전체도 아니고 이마 아래 반쪽 부분만 나와 있다. 감독은 왜 호랑이 대신 주인공의 얼굴을 그리 크게 확대해놓았을까?

일제강점기,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다룬 영화 대호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 무렵의 지리산이 배경이다. 호랑이 가죽을 탐내는 일본군 대장이 호랑이 사냥에 혈안이 되어 부하 장교에게 호랑이를 잡아서 오라고 지시한다. 장교는 부하들을 이끌고 지리산에 와서 조선인 사냥꾼들을 앞세워 사냥에 나선다.

조선인 사냥꾼을 이끄는 도포수(都砲手)는 옛날 대호에게 얼굴에 흉한 상처를 입은 터라 그에 대한 복수심이 가득하다. 그는 지리산에 사는 명포수 천만덕을 찾아와 도와주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총을 놓은 지 오래된 천만덕은 “잡을 놈만 잡는 것이 산에 대한 예의인 겨. 뭐든 쓸데없이 욕심 들믄 안 되는 겨.”하며 그의 청을 거절한다. 그는 옛날에 사냥하다 아내를 잃고 지금은 늦둥이 아들 석이와 약초를 캐며 살고 있다.

일본군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대호는 외눈박이 호랑이다. 그런데 그 호랑이는 주인공 천만덕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옛날 천만덕이 호랑이 한 마리를 잡고 보니 외눈박이 개호주가 딸려 있었다.

젖먹이가 있는 줄 알았다면 잡지 않았을 것인데, 실수를 깨달은 그는 어린 것을 가엾이 여겨 굴속에 먹이를 잡아다 주며 어미 구실을 한다. 그 어린 것이 자라서 지금의 대호가 된 것이니 그것을 잡자는 말이 귀에 들어올 턱이 없다.

드디어 일본군의 대공세가 시작된다. 그러나 대호가 어찌나 날래고 사나운지 그들은 총도 제대로 쏘아보지도 못하고 혼비백산한다. 이에 분개한 일본군 대장은 자신이 직접 철포부대를 이끌고 사냥에 나선다. 이때는 천만덕의 아들 석이도 합세한다.

그는 자기 아비가 사냥에 나서지 않은 것이 못마땅할뿐더러 장차 아랫마을 처녀와 혼인할 돈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비 몰래 사냥꾼들 틈에 끼어든 것이다.

철포까지 동원한 일본군의 두 번째 작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대규모의 병력이 신출귀몰한 대호에게 물려서 내동댕이치어지고, 도포수와 석이마저도 목숨을 잃는다. 대호 또한 여러 발의 총탄을 맞는다.

[그 시절 영화] 대호 1

영화 대호, 천만덕과 대호의 교감이 주는 감동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비장감이 흐른다. 늑대들의 먹잇감이 되려는 석이의 시신을 대호가 구해내어 천만덕에게 가져다준다. 하나뿐인 혈육을 잃은 천만덕은 자기가 살던 초가집과 함께 아들을 화장시킨다. 그리고 눈이 쌓인 산정에 올라가 대호와 만나 얼싸안고 절벽에서 몸을 던지며 최후를 맞는다.

우리나라에서 예부터 호랑이는 산군(山君), 즉 산의 임금으로 불리며 신성시했다. 산신당(山神堂)에 가보면 산신령이 호랑이를 끼고 있듯이 호랑이는 민간에서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었다. 영화 <대호>에서도 호랑이는 여느 짐승과는 다른 영물(靈物)로 나온다.

그는 어린 자기를 키워준 천만덕의 은혜를 알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해쳐도 그만큼은 해치지 않으며 말은 못 해도 눈빛으로 서로 통한다. 이 영화는 단순한 사냥꾼 이야기를 뛰어넘어 인간과 맹수의 교감을 그리고 있기에 감동을 준다.

조선의 산군(山君), 대호와 일본군의 대결

무엇보다 호랑이를 잡으려는 것이 일본군이라는 사실은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일본인은 유독 조선 호랑이에 욕심을 냈다.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의 호랑이 사냥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일제강점기에도 해로운 짐승을 없앤다는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으로 호랑이 씨 말리기에 열을 올렸다.

<대호>에서 호랑이와 일본군의 대결은 곧 조선과 일본의 대결을 은유한다. 그들이 조선 호랑이에 눈독을 들인 것은 삼천리 금수강산에 쇠말뚝을 박아 민족정기를 말살하려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그 가죽을 탐내서라기보다는 호랑이로 상징되는 조선인의 얼을 짓밟으려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가장 통쾌한 장면은 대호가 번개처럼 날고뛰며 벼락 치듯 일본군을 작살 내는 대목이다. 두 차례에 걸쳐 조선 호랑이의 위력을 과시하는 그 눈부신 장면은 이충무공의 명량대첩과 김좌진의 청산리 전투, 홍범도의 봉오동전투를 보는 것처럼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그에 반해 천만덕과 대호가 얼싸안고 죽는 마지막 장면은 적이 불만스럽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조선 호랑이의 명맥을 이어 가야 했는데 그렇게 죽어버린다면 우리의 민족정신은 어떻게 되는가.

아마 감독은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고 비장미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그렇게 처리했는지는 몰라도 일제의 폭압 아래서도 결코, 잃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얼을 생각할 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호는 길이 잘든 호랑이를 데려다 찍은 듯 연기가 아주 훌륭하다. 특히 그가 바위 위에 올라 일본군 앞에 첫 위용을 드러내는 장면이나, 종횡무진 일본군을 무찌르는 장면, 마지막에 두 마리의 새끼들이 물가에서 나비를 쫓고 물을 마시며 노니는 앙증맞은 회상 장면은 다시 보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다.

그런데 이는 실제 호랑이가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 효과라고 한다. 우리의 빼어난 미디어 기술이 놀라울 뿐이다.

대호 포스터에 호랑이가 없는 이유

<대호>의 포스터에 왜 호랑이 대신 주연배우의 얼굴을 내놓았을까. 아마 그것은 주인공 천만덕을 대호와 동일시했기 때문이 아닐까. 대호와 천만덕은 서로 뜻이 통하고 생사를 함께 나누는 공동운명체로 나오지 않는가.

어떻게든 대호를 잡으려는 일본군에 맞서 그것을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주인공의 의지야말로 조국을 지키려는 민족자존의 의로운 행위가 아니겠는가.

마치며

* 해당 내용은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장병호 영화이야기 [은막의 매혹]에서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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