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영화] 개벽

Fly High, Run Far, 감독 임권택, 출연 이덕화, 이혜영, 김명곤, 1991

붉은 산이 검어지고, 온 길에 비단이 깔리고,
만국의 군대가 우리 국토를 쓸고 간 후에
개벽은 이루어질 것이오.

[그 시절 영화] 개벽, 감독의 장인정신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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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벽

베스트셀러와 흥행 영화, 그 명과 암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명작이 아닌 것처럼 흥행에 대박을 터뜨린 영화라고 해서 모두 명화는 아니다. 영화의 흥행은 그 질적 수준과 관계없이 특정한 시대 상황이나 분위기에 편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객의 구미에 상관없이 감독이 자신의 철학과 작가정신을 담아 만들어낸 영화들 가운데 엄지를 꼽을 만한 작품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사실 대박 영화는 일정한 공식 같은 것이 있다. 대개 이름 높은 미남미녀가 등장하여 애절한 사랑을 펼치거나 아니면 전에 보지 못한 기발한 소재를 가져와 극적인 사건을 전개함으로써 대중의 눈길을 끌고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고전의 반열에 오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3), <로마의 휴일>(1953)을 비롯해서 <러브 스토리>(1970)나 <타이타닉>(1997)이 주연배우의 매력에 기댄 것이라면, <태양은 가득히>(1960)나 <사운드 오브 뮤직>(1965), <졸업>(1967)을 비롯하여 <E.T.>(1982)나 <사랑과 영혼>(1990), <쥬라기 공원>(1993) 색다른 소재나 파격적인 이야기로 눈길을 끌었던 것들이다.

작가 정신이 빛나는 영화 개벽

피땀 흘려 만든 영화가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할 때 감독으로서 그보다 맥 빠지는 일이 없겠지만 눈썰미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응분의 평가를 해준다.

동학 2대 교주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 1827~1898)의 생애를 그린 임권택 감독의 <개벽(開闢)>(1991)은 관객몰이에는 재미를 못 봤지만, 감독의 작가의식과 장인정신만큼은 충분히 인정할 만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해월의 생애와 가르침

도올 김용옥이 각본을 쓴 이 영화는 동학의 창시자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법통을 이어받은 해월은 곳곳을 다니며 포교 활동을 펼치는데, 늘 관군에게 쫓기는 신세이다.

외딴 마을 골방에 숨어 교리를 설파하다가 포졸들의 기습을 받고 뒷담을 넘어 피신하는 일을 밥 먹듯 되풀이한다. 이때 대구 감영 소속의 박 포교라는 인물은 아예 소임을 내려놓고 해월을 쫓는 일을 필생의 업으로 삼는다. 해월의 아내와 어린 딸들도 거처를 옮겨 다니며 숱한 고초를 겪는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쫓기면서 살아야 해요?”

오랜만에 상봉한 그의 아내가 묻는다.

“개벽 된 세상이 올 때까지요.”

“그게 언제인데요? 너무 까마득해요.”

“지금 까마득하게 보이는 것도 어느 땐가 느닷없이 가까워질 수 있소. 수운 선생께서 이미 개벽의 운세가 이 땅에 와 있다고 말씀하셨소.”

해월은 만나는 사람마다 동학의 포교에 힘쓴다. 영화는 수시로 그의 교리문답을 소개한다.

“개벽이란 무엇입니까?”

어느 도인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 했다.

“성인이 태어나 도리를 밝히고 문물을 새로 펴서 사람답게 살 수 있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개벽입니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현재와 같은 수탈과 핍박에 찌든 고통의 세상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안락과 평화의 세상으로 짐작된다.

해월은 인간 평등을 역설한다. 일부 양반 출신 도인들이 천민을 접주로 임명한 데 반발하자 “모든 사람은 한울님처럼 존엄합니다.”라고 말하며 이렇게 설득한다.

“수운 선생은 양반 출신이지만 득도 후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데리고 계시던 두 하녀를 하나는 수양딸로 삼고, 또 하나는 맏며느리로 삼으셨소. 우리의 도는 적서(嫡庶)의 구분과 반상(班常)의 차별을 타파하는 도올시다. 양반과 쌍놈의 구별은 사람이 정한 것이지 한울님이 정한 것이 아니외다.”

[그 시절 영화] 개벽 1
영화 개벽 스틸컷

해월은 온건주의자이자 비폭력주의자이다.

영해 접주 이필제가 “언제까지 수탈만 당하고 살아야 합니까? 백성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줍시다.”라며 과격한 발언을 하자 “우리는 아직 드러낼 때가 아닙니다. 아직도 밑바닥을 다져야 합니다.”며 봉기보다는 우선 때를 기다리며 교세 확장에 치중하기를 권한다.

그는 보은집회에서도 “우리가 여기 모인 것은 수운 선생의 억울한 죽음을 신원해 개벽을 믿는 우리들의 신앙의 자유를 획득하고자 함이지 누구와 싸움을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흥분으로 폭력 봉기를 일삼는다면 그 뒤에 일어나는 사태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평화적 저항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창의는 백성의 본능입니다. 우리는 죽을 대로 죽어왔기 때문에 여기서 더 죽을 수는 없습니다.”라고 반발하는 전봉준과 견해 차이를 보인다.

마침내 전봉준이 고부에서 기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도는 세상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 있는 것인데 도로써 세상을 어지럽히다니 말이 되는가?”하고 탄식하며 간절히 당부한다. “녹두에게 이르시오. 항복을 할지언정 휘하의 선남선녀를 도륙하지 말라고 말이오.”

해월의 시각으로 그리다 보니 전봉준의 존재와 갑오농민전쟁의 의의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지적받는 대목이다.

봉기와 전봉준의 최후

결국, 봉기는 진압되고 전봉준은 붙잡혀 처형된다. 그 뒤로 해월 또한 원주에서 도인의 밀고로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진다.

“선생님 개벽은 언제 오리까?”

도인과의 문답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붉은 산이 검어지고, 온 길에 비단이 깔리고, 만국의 군대가 우리 국토를 쓸고 간 후에 개벽은 이루어질 것이오.”

평생 쫓겨 다니며 가시밭길을 걸었던 해월이 꿈꾸던 개벽의 세상은 인간의 의식개혁과 현실적 삶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 전제조건으로 외세가 물러가고 나라가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한 세상은 어디까지나 비폭력적으로 추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영화의 공력

이 영화가 공력을 많이 들여 만들어졌다고 생각되는 것은 해월의 생애를 뼈대로 하면서 수많은 부수적인 내용이 잔가지를 뻗고 있는 점이다.

이를테면 해월의 아내가 배가 부른 셋째 부인과 매화 숲을 거닐며 태교에 관해 이야기하는 봄 풍경부터 해월이 눈발 속에서 노숙하며 주먹밥을 먹는 겨울 장면에 이르기까지 춘하추동을 고루 영상에 담아 세월의 흐름을 나타낸 것이라든지,

새로운 교도를 맞아 동학 입도 의식을 거행하는 장면이라든지, “가련하다. 가련하다. 이내 가운 가련하다. 나 또한 출세 후로 득죄부모 아닐런가.” 하는 용담유사의 가사가 불린다든지, “스치는 바람은 오현금을 울리는데, 저 티끌 저세상은 언제나 저 티끌을 벗으려나.” 하는 해월의 시가 눈밭에서 읊어진다든지,

전봉준의 압송 장면에서 “운이 가니 영웅이라 한들 어찌해볼 도리 없다. 나라 위한 이 붉은 마음 그 누가 헤아리리오.”라는 그의 유시(遺詩)가 배경에 깔리는 것들을 들 수 있다.

특히 감동적으로 엮이는 것은 해월의 뒤를 쫓던 박 포교의 사연이다.

해월의 뒤를 추적하던 그는 평복으로 동학교도에 잠입하여 활동하다가 관군에게 붙잡혀 고문 끝에 억울한 죽임을 당한다. 그 아들 계동이 아비의 원한을 풀고자 해월을 쫓다가 되레 그로부터 감화를 받아 동학교도가 되고, 우금치 전투에서 적탄에 숨을 거둔다.

또 하나 돋보이는 장면이 있다.

“시호! 시호! 시호!”라는 우렁찬 군중들의 노래와 함께 검정 두루마기 차림의 한 사내가 칼춤을 춘다. “때가 왔네. 때가 왔어. 다시 못 올 때가 왔네. 만세일지 장부로서 오만 년 만에 때가 왔네. 용천검 드는 칼 아니 쓰고 무엇 하리.”하고 소리 높여 노래하던 그는 칼춤을 마치고 해월 앞에 얼굴을 드러낸다.

“어디서 칼춤을 배웠는가?”

“수운 선생께서 남원 교룡산성 은적암에 계실 때 가르친 것이 전라도 일대에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디에 사는가?”

“고부군 이평면 장내리에 살고 있습니다.”

“그대 이름은 무엇인가?”

“전봉준이라 하옵니다.”

배우 김명곤이 역할을 맡은 그는 해월과 대립하는 보은집회와 포승줄에 묶인 채 압송되는 장면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

이 영화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 이덕화의 위엄에 찬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갓 결혼한 젊은 시절부터 앞머리가 빠진 채 수염이 성성한 일흔의 모습까지 주인공의 전 생애를 보여준다.

특히 처형 직전 피골상접한 모습으로 서양 사진사 앞에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관계로 다른 사람이 뒤에서 부축하여 사진을 찍는 장면은 실제 전해오는 그의 사진과 닮은꼴을 보이며 비애감을 불러일으킨다.

해월의 아내 손 씨 역할을 맡은 이혜영 또한 풋풋한 젊은 색시 때부터 남편의 처형 장면을 망연히 지켜보는 노파의 모습까지 폭넓은 연기를 보여준다. 새색시 시절의 어느 봄날 그는 나무 아래 서 있는 남편에게 “뭐 생각하세요?” 묻는다.

해월은 “나뭇가지가 부러진 것도, 밭을 일구다 지렁이가 상처를 받는 것도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소.”하고 대답한다. 그 말을 들으며 밝게 웃는 모습은 고혹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들 부부가 갯벌에서 조개를 잡다가 네 아이를 앞세우고 돌아오는 장면 또한 여간 멋지지가 않다. 어린 딸이 “조개는 왜 만지면 오그라들어?”하고 묻자 해월은 “한울님이라서 그래.”라고 대답하며, 사람이 조개를 먹는 것은, 한울님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한울님을 살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때 아내는 “난 한울님보다 우리가 사람이길 원해요. 더더욱 나는 여자이기를 원하고요.” 하며 평범한 인간으로서 살고 싶은 열망을 드러낸다. 이에 해월은 “이 사람, 우리 식구 중에서 제일 바보야.” 하며 너털웃음을 웃고 마는데, 그들 부부가 다정스레 팔짱을 끼고 갯벌을 걷는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이혜영은 <땡볕>(1985)과 <여왕벌>(1986), <성공시대>(1988)와 <명자, 아끼꼬, 소냐>(1992) 등 여러 영화에 출연했지만 나는 <개벽>을 그의 최고작으로 꼽고 싶다.

임권택 감독의 예술적 감각

나는 이 영화를 겨울철에 보았다.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고 관객도 몇 되지 않는 썰렁한 삼류극장이었다. 추위에 떨면서 잔뜩 웅크린 채 보았지만 두 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에도 한 장면 한 장면에 감독의 피와 땀이 느껴졌다. 보석을 주운 기분이었다.

수다한 역사적 순간들을 오밀조밀하게 화면 속에 저며 넣은 임권택의 예술적 감각은 뒤이어 나올 <서편제>(1993)와 <축제>(1996), <춘향뎐>(2000)과 <취화선>(2001)의 예고편이 아니었을까.

마치며

* 해당 내용은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장병호 영화이야기 [은막의 매혹]에서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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