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영화]나랏말싸미. 훈민정음은 누가 만들었나? 새 문자의 완성을 저들의 공으로 돌려야만 천년이 가도 돌이킬 수 없는 나랏일이 된다.
THE KING’S LETTERS, 감독 조철현, 출연 박해일, 한석규, 2019.
나랏말싸미
훈민정음 창제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을 손바닥 뒤집듯이 일백팔십도 뒤바꿔버린 영화가 나왔다. 바로 훈민정음 창제에 관한 이야기이다.
훈민정음은 누가 만들었는가? 이는 한국인이라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훈민정음을 만든 이는 따로 있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은 철저히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이야말로 폭탄선언 아닌가. 한글학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도대체 누가 이런 영화를 만들었나. 감독의 두둑한 배짱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영화 <나랏말싸미>와 기존 관념의 충돌
조철현 감독의 <나랏말싸미>(2019)는 한 마디로 혁명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정찬주의 소설 <천강에 비친 달>을 영화화했다는데, 한글 창제에 관한 우리의 기존 관념을 단박에 부숴버린다.
새로운 문자를 만들려는 기획은 물론 세종대왕에게서 비롯되었다. 영화의 첫머리에 기우제 장면이 나온다. 제관이 한문으로 된 축문을 읽자, 임금은 “어찌 신령이 그것을 알아듣겠느냐?”면서 알기 쉽게 우리말로 읽으라고 이른다.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미 스님과 새 문자 창제의 비밀
그 무렵 일본의 승려들이 궁에 몰려와 팔만대장경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인다. 선대왕이 주기로 약속한 것인 데다가 유교 국가에서 불경이 필요 없을 터이니 자기들에게 넘겨달라는 주장이었다.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 곤란한 상황에 한 승려가 해결사로 나선다.
“팔만대장경의 주인은 임금도 신하도 중도 아니고 백성들이다. 굳이 가지고 가겠다면 주인의 허락을 받아오라.”
스님의 유창한 범어(梵語) 실력과 당당한 논리에 압도당한 일본 승려들은 아무 소리도 못 하고 물러간다.
그는 신미(信眉, 1403~1480)라는 스님이었다. 그렇게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공로로 임금의 부름을 받는데, 그는 임금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다. 왜 절을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의 대답이 걸작이다.
“개가 절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나라에서 중을 개 취급하니 국법을 따를 뿐입니다.”
국가의 억불 정책에 대한 거침없는 항의이다. 그의 도발적인 행동과 대쪽 같은 논리에 임금은 말문이 막힌다.
임금은 그가 산스크리트어를 비롯한 티베트 문자나 파사파문자에 능통한 것을 알고, 새 문자를 만드는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굳이 왜 문자를 만들려 하십니까?”
스님의 질문에 임금은 이렇게 대답한다.
“고려는 중들이 부처를 빙자하여 부와 권력뿐만 아니라 지식마저 독점했기에 썩어서 망했다. 조선의 유자(儒者)들이라고 다를까. 나는 새 문자로 그 독점을 깨버리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그는 임금의 생각에 쾌히 공감한다. 그리고 수하 승려들을 비롯하여 수양과 안평 두 대군을 데리고 새 문자 만들기에 착수한다. 이 사업은 상당 기간 대신들이 모르는 가운데 진행됐다. 뒤늦게 신하들이 알고 반발했다.
“그런 중차대한 일을 신하들과 상의도 없이 추진하다니요?”
그러나 임금의 생각은 흔들림이 없다. 결국, 긴 산고 끝에 스물여덟 글자가 만들어졌다. 그때 임금이 뜻밖의 명을 내린다.
“새 문자의 모든 것을 집현전 학자들에게 전수하라. 새 문자의 완성을 저들의 공으로 돌려야만 천년이 가도 돌이킬 수 없는 나랏일이 된다.”
승려가 만든 문자라고 하면 전국의 유생들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터이기에 그러한 계책을 내놓은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비열하게 태어난 문자가 과연 당당하게 살아남을 수 있겠소?”
신미 스님은 크게 분노하며 궁을 떠나지만, 결국 임금의 뜻대로 새 문자는 집현전 학자들이 만든 것으로 하여 반포된다. 이렇게 우리가 알지 못했던 훈민정음 창제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이다.
영화의 설득력과 논란
영화는 굉장히 설득력이 높다. 훈민정음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영화의 내용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일 만큼 논리가 정연하다. 불교와 유교의 대립이나 왕권과 신권의 갈등 같은 것도 첨예하게 그려졌다.
나 또한 이 영화가 말하는 사실에 대하여 ‘설마 그러랴?’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랬는지도 모르지.’ 하고 여겨졌다.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며,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신미 스님의 역사적 근거
이 영화의 신미 스님은 속성(俗姓)이 영동김씨(永同金氏)인데, 그 족보에 “집현전 학사로서 세종의 총애를 입었다(得寵於世宗)”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가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했다는 유력한 근거는 스님이 당대 최고의 범어 전문가였고, 범어의 제자원리와 훈민정음의 제자원리가 흡사하다는 데 있다.
최만리와 같은 유학자가 반대의견을 낸 것도 불교와의 긴밀한 관련성 때문이라고 한다. 더욱이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처음 지어진 것이 유학 서적이 아니라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과 같은 불교 서적이라는 점도 의구심을 자아낸다.
과연 영화 <나랏말싸미>는 나오자마자 역사 왜곡이라며 격렬한 공격을 받았다. 한글 창제의 주역이었던 세종대왕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신미 스님을 올려놓았다는 것이 주된 비판이었다. 감독도 그것을 예상했는지 영화의 첫머리에 “훈민정음의 다양한 창제설 가운데 하나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했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어놓기는 했다.
그런데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고 영화를 때리기만 할 것인가?
따지고 보면 지금 우리가 정사(正史)로 믿고 있는 것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가.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고 하듯이, 아무리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라 하더라도 당대의 상황에 따라 왜곡되거나 변조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역사기록의 행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양한 시각과 역사 연구의 중요성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우리는 역사적 근거를 고수하며 다른 견해를 배척하기보다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여러 가지 시각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역사의 진실을 찾는 바른 태도가 아닐까.
세상 사람 모두가 희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과감히 검다고 주장한 감독의 패기와 임금 앞에서도 꼿꼿한 가부좌로 고개를 쳐들고 앉아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낸 신미 스님의 기개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치며
* 해당 내용은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장병호 영화이야기 [은막의 매혹]에서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